3화. 도시의 1층은 왜 모두 물류가 되었는가
1.
아파트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오른쪽에는 택배 보관함이 줄지어 서 있다. 왼쪽에는 냉장 택배함이 있다. 구석에는 퀵커머스 픽업존 표지판이 붙어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들어가려는데, 배달 라이더가 먼저 나온다. 손에는 보온 가방. 다음 배달지로 향한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탄다. 문이 닫히기 전, 또 한 명의 라이더가 뛰어온다.
"잠깐만요!"
문을 잡아준다. 라이더가 들어온다. 우리는 함께 올라간다.
나는 5층에서 내린다. 라이더는 계속 올라간다.
2.
밖으로 나온다.
아파트 정문 앞. 오토바이 서너 대가 대기 중이다. 라이더들이 휴대폰을 보며 다음 콜을 기다린다.
길 건너편 편의점 앞. 택배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택배 기사가 손수레에 박스를 싣는다.
그 옆 빌딩 1층. '쿠팡 풀필먼트 센터'라는 간판. 어제까지 카페였던 자리다.
대로변 주유소. 주유하는 차보다 택배 차량이 더 많다. 기사들이 간단히 커피를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도시의 1층 풍경이다.
3.
10년 전, 이 풍경은 달랐다.
아파트 로비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소파에 앉아 이야기하는 주민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관리실 앞에서 택배 받던 풍경.
지금은? 로비는 통과 공간이 되었다. 아무도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택배함이 자리를 차지했다. 냉장 택배함이 공간을 채웠다. 픽업존이 동선을 결정한다.
로비는 사람의 공간에서 물류의 공간이 되었다.
4.
거리도 마찬가지다.
과거 건물 1층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었다.
카페, 서점, 꽃집, 문구점, 빵집. 사람들이 들어가고, 머무르고, 나오는 곳. 우연히 지인을 만나는 곳. 산책하다 잠시 앉는 곳.
1층은 도시의 얼굴이었다.
지금 1층에는 무엇이 있는가?
편의점 픽업 코너. 퀵커머스 물류센터. 다크 키친. 배달 앱 물류 거점. 무인 택배 보관함. 라이더 대기 공간.
1층은 사람보다 상품이 먼저 내려오는 곳이 되었다.
5.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임대료 때문? 수익성 때문? 상권 변화 때문?
그런 설명은 표면적이다.
진짜 이유는 더 구조적이다.
도시의 동선이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사람이 움직였다.
현재: 상품이 움직인다.
이 전환이 도시 공간 전체를 바꾸고 있다.
6.
과거의 도시는 사람의 이동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역, 버스 정류장, 학교, 시장, 병원, 관공서. 모든 공간은 사람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배치되었다.
걷기 편한 보도. 머무를 수 있는 벤치. 만날 수 있는 광장.
도시는 사람의 동선을 위해 설계되었다.
그리고 1층은 그 동선의 가장 중요한 접점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가는 곳. 사람들이 가장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 사람들이 우연히 마주치는 곳.
그래서 1층에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7.
그런데 지금은?
도시는 상품의 동선을 기준으로 재설계되고 있다.
어디에 MFC(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를 둘 것인가. 어디에 다크 스토어를 배치할 것인가. 어디에 라이더 대기 공간을 만들 것인가. 어디에 픽업존을 설치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사람의 편의가 아니라, 배송 효율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배송 차량이 접근하기 쉬운가? 상품을 하역하기 편한가? 라이더가 대기하기 좋은가? 1시간 배송 반경을 커버할 수 있는가?
1층은 이제 배송 최적화를 위한 거점이 되었다.
8.
편의점을 보자.
과거 편의점은 무엇이었나? 간단한 물건을 사는 곳. 담배 사러 가는 곳. 택배 보내는 곳.
지금 편의점은?
쿠팡이츠 픽업 거점. 배민 물류 파트너. GS25 픽업 서비스. 무인 택배함 설치 장소.
편의점은 소매점에서 물류 노드로 전환되었다.
편의점 직원의 업무를 보자.
과거: 계산, 진열, 청소
현재: 계산 + 진열 + 청소 + 픽업 상품 관리 + 배달 주문 처리 + 택배 접수
편의점은 여전히 편의점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능은 완전히 달라졌다.
편의점은 배송 네트워크의 말단 서버가 되었다.
9.
주유소도 마찬가지다.
과거 주유소는 무엇이었나? 기름 넣는 곳. 세차하는 곳.
지금 주유소는?
배송 차량 급유 거점. 라이더 휴게 공간. 택배 기사 집결지.
주유소 편의점에 가보라. 고객의 절반은 배달·택배 기사들이다.
커피 한 잔 마시고. 화장실 다녀오고. 다음 배송지 확인하고. 다시 출발한다.
주유소는 에너지 충전소에서 물류 허브로 바뀌었다.
10.
아파트 1층도 변했다.
과거 아파트 1층 상가는?
동네 슈퍼, 미용실, 세탁소, 분식집. 주민들이 자주 가는 곳. 단골이 있는 곳.
지금 아파트 1층은?
퀵커머스 물류센터. 새벽 배송 창고. 다크 키친. 무인 택배함 설치 공간.
어떤 아파트는 1층 전체가 물류 공간이다.
쿠팡 로켓 배송 거점. 마켓컬리 새벽 배송 센터. 배민 다크 키친.
주민들은 이곳에 들어가지 않는다. 상품만 들어가고 나온다.
아파트 1층은 주민의 공간에서, 배송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11.
왜 1층인가?
간단하다. 접근성 때문이다.
배송은 속도 경쟁이다. 30분 배송, 1시간 배송, 새벽 배송. 시간이 핵심이다.
시간을 줄이려면? 최종 목적지와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
1층은 가장 가까운 곳이다.
차량 접근 가능. 하역 용이. 보행 거리 최소화. 엘리베이터 대기 시간 절약.
1층은 물류 최적화의 핵심 변수다.
그래서 1층은 점점 더 물류 공간이 된다.
12.
대로변을 걸어보자.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자.
10년 전 1층: 카페, 음식점, 서점, 옷 가게, 꽃집, 문구점, 화장품 가게.
지금 1층: 편의점(픽업 거점), 다크 키친, 물류센터, 무인점포, 또 편의점, 또 물류센터.
사람이 들어가는 공간이 줄었다. 상품이 들어가는 공간이 늘었다.
1층은 더 이상 사람을 맞이하지 않는다. 1층은 상품을 처리한다.
13.
이건 단순히 업종 변화가 아니다.
도시의 기능이 재편되는 중이다.
과거 도시의 기능: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고, 교류하는 곳.
현재 도시의 기능: 상품이 이동하고, 분류되고, 배송되는 곳.
도시는 여전히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물류 네트워크가 되고 있다.
1층은 그 네트워크의 노드다.
14.
그래서 1층의 풍경이 바뀌었다.
과거 1층 풍경: 사람들이 걷고, 앉고, 이야기하고, 머무른다.
지금 1층 풍경: 오토바이가 대기하고, 라이더가 뛰고, 박스가 쌓이고, 차량이 정차한다.
1층은 사람의 리듬이 아니라, 배송의 리듬으로 작동한다.
아침 7시: 새벽 배송 하역 점심 12시: 배달 피크타임 저녁 7시: 퇴근 후 배송 집중 밤 10시: 야식 배달 시작
1층은 24시간 물류가 흐른다.
15.
누가 1층을 결정하는가?
과거에는 건물주, 상인, 주민이 결정했다. 어떤 가게가 들어올지. 어떤 공간으로 쓸지.
지금은?
플랫폼이 결정한다.
쿠팡이 이 위치에 거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1층이 물류센터가 된다.
배민이 이 지역에 다크 키친을 설치하기로 하면, 1층이 주방이 된다.
GS25가 픽업 서비스를 확대하면, 편의점 1층 절반이 픽업존이 된다.
1층의 기능은 플랫폼의 물류 전략에 따라 결정된다.
16.
그렇다면 1층은 누구의 것인가?
법적으로는 건물주의 것이다. 하지만 기능적으로는?
플랫폼 물류 시스템의 일부다.
1층은 개별 상점이 아니라, 배송 네트워크의 물리적 노드로 작동한다.
도시는 여전히 건물들의 집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배송 인프라의 말단 거점들이 되고 있다.
17.
이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편의점이고, 주유소고, 아파트다. 간판도 같고, 건물도 같다.
하지만 기능은 완전히 바뀌었다.
사람을 위한 공간에서, 상품을 위한 공간으로.
이 전환은 조용하고, 빠르고, 거스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30분 배송. 1시간 배송. 새벽 배송. 즉시 배송.
우리가 빠른 배송을 원할수록, 1층은 더 빠르게 물류 공간이 된다.
18.
여기서 질문 하나.
1층이 물류 공간이 되면, 2층 이상은?
사람의 공간이 남아 있는가?
아니다. 2층 이상도 변하고 있다.
오피스텔 → 다크 키친 상가 건물 → 물류 창고 빌라 → 공유 오피스(재택 근무 공간)
도시 전체가 배송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19.
그래서 이제 도시는 무엇인가?
과거: 사람들이 사는 공간
현재: 배송 시스템이 작동하는 구조물
도시는 여전히 '도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완전히 달라졌다.
도시는 공간이 아니라, 시스템이 되었다.
20.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편하잖아. 빠르잖아. 효율적이잖아.
맞다. 문제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이제 우리를 위해 설계되지 않는다.
도시는 배송 효율을 위해 재설계되고 있다.
1층이 물류 공간이 되는 건, 우리가 더 편해지려는 선택의 결과다.
하지만 그 선택이 누적되면, 도시 전체가 바뀐다.
사람이 걷는 도시에서, 상품이 흐르는 도시로.
21.
내일 아침, 아파트 로비를 지나갈 때, 한 번 멈춰서 보라.
택배함이 몇 개나 있는가? 라이더가 몇 명이나 지나가는가? 사람은 몇 명이나 머무르고 있는가?
그리고 질문해보라.
이 공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음 주,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간다.
편의점, 주유소, 아파트는 왜 물류 거점이 되었는가. MFC는 무엇이고, 왜 우리 동네 한가운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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