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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누가 당신의 집 앞을 통제하는가

김철민
김철민
- 9분 걸림

1.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열기도 전에 알았다. 배송이다.

문을 연다. 라이더가 서 있다.

"주문하신 거요."

나는 받는다. "감사합니다."

라이더는 이미 돌아선다. 다음 배송지로 향한다.

문을 닫는다. 현관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는다.

이 과정은 30초.

나는 생각한다. 방금 이 사람은 내 집 앞까지 왔다. 정확히 내 현관문 앞까지.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을 초대한 적이 없다.


2.

'라스트마일(Last Mile)'.

물류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다.

상품이 창고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마지막 구간. 물류센터에서 내 집 앞까지. 보통 1~5km 이내의 거리.

업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라스트마일이 물류의 핵심이다." "라스트마일 경쟁력이 승부를 가른다." "라스트마일 최적화가 미래다."

그들이 말하는 '마지막'은 거리의 마지막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의미의 '마지막'을 본다.

라스트마일은 통제권의 마지막이다.


3.

과거에는 '내 집 앞'이 명확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 건물 1층 로비. 집 현관문.

이 경계는 분명했다. 여기까지는 공공 공간. 여기부터는 사적 공간.

누가 내 집 앞까지 올 수 있는가?

가족. 친구. 초대받은 손님. 우편 배달원. 택배 기사 (1층에서 호출하면).

내가 허락한 사람만 올 수 있었다.


4.

지금은?

하루에도 여러 명이 내 집 앞까지 온다.

새벽 배송 기사 (새벽 6시). 우유 배달원 (아침 7시). 쿠팡 로켓배송 (오전 10시). 점심 배달 라이더 (낮 12시). 택배 기사 (오후 3시). 저녁 장보기 배송 (저녁 6시). 야식 배달 (밤 10시).

나는 이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온다. 정확히 내 현관문 앞까지.


5.

초인종을 울린다. 문 앞에 놓고 간다. 사진을 찍어 전송한다.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다.

몇 시에 올지 → 시스템이 결정 누가 올지 → 플랫폼이 배정 어떤 경로로 올지 → 알고리즘이 계산

나는 단지, 주문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그런데 그 클릭 하나가, 내 집 앞까지의 모든 권한을 넘긴 것이다.


6.

현관 앞은 이제 무엇인가?

과거: 사적 공간의 경계선

현재: 플랫폼 서비스의 종착점

현관문 앞 1미터.

이 공간은 법적으로는 내 공간이다. 하지만 기능적으로는?

배송 시스템의 마지막 노드다.

여기까지는 시스템이다. 여기부터는 나다.

그런데 그 경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7.

문 앞 배송(Door-to-Door).

편리하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1층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문 앞까지 온다는 건, 내 사생활의 마지막 경계까지 침투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안다.

내가 몇 층에 사는지. 몇 호에 사는지. 집 앞이 어떻게 생겼는지. 문 앞에 신발이 몇 켤레 있는지. 혼자 사는지, 가족과 사는지.

그들은 기록한다.

"301호, 문 앞 배송 완료." "403호, 문 앞에 아기 신발 있음. 조심." "502호, 부재 시 경비실."

내 집 앞이 데이터가 된다.


8.

새벽 배송을 생각해보자.

새벽 6시. 나는 잔다.

그 시간에 누군가 내 집 앞까지 온다. 문 앞에 물건을 놓는다. 사진을 찍는다. 간다.

나는 모른다. 자고 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문 앞에 우유가 있다. 계란이 있다. 빵이 있다.

편리하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자는 동안, 누군가 내 집 앞까지 왔다.


9.

이게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자는 동안, 모르는 사람이 집 앞까지 와서, 물건을 놓고 간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당연하다.

왜?

우리가 허락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가 그 권한을 넘겼기 때문이다.

클릭 한 번으로.


10.

라스트마일은 서비스처럼 보인다.

"고객님의 편의를 위해." "문 앞까지 안전하게." "빠르고 정확하게."

하지만 다르게 보면,

라스트마일은 침투다.

플랫폼이 내 생활권 안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단계.

창고 → 물류센터 → 거점 → 동네 → 건물 → 내 집 앞.

이 여정의 마지막은, 물리적으로는 '거리'지만, 의미적으로는 '주권'이다.


11.

그렇다면 누가 내 집 앞을 통제하는가?

나는 여전히 문을 연다. 나는 여전히 받는다.

하지만,

언제 올지는 내가 정하지 못한다. 누가 올지는 내가 선택하지 못한다. 어떤 방식으로 올지는 내가 결정하지 못한다.

나는 수신자일 뿐, 설계자가 아니다.


12.

그리고 이제, 현관 앞은 더 이상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스마트 도어락. 현관 카메라. 무인 택배함. 냉장 택배함.

이 모든 장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나의 편의? 맞다.

하지만 동시에, 배송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한 인프라다.

현관은 점점 더, 배송 시스템의 물리적 인터페이스가 되어간다.


13.

일부 아파트는 이미 실험 중이다.

스마트 도어락 + 냉장고 연동. 배송 기사가 부재 시 집 안에 들어가, 냉장고에 식품을 넣고 나온다.

"고객님이 안 계셔도 신선하게 보관됩니다."

편리하다.

하지만 이건, 배송 시스템이 내 집 안까지 들어온다는 뜻이다.

라스트마일을 넘어선, 라스트 인치(Last Inch)다.


14.

여기서 질문하나.

편리함과 주권은 교환 가능한가?

나는 편리함을 얻었다. 대신, 무엇을 넘겼는가?

내 집 앞까지의 접근권. 내 부재 시 공간 사용권. 내 생활 패턴 정보. 내 소비 데이터.

이것들을 나는 자발적으로 넘겼다.

클릭 한 번으로.


15.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편하잖아. 안전하잖아. 믿을 수 있잖아.

맞다. 문제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라스트마일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권의 문제다.

마지막 1km가 아니라, 마지막 경계선이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점점 내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16.

내일 아침, 현관문을 열 때, 한 번 생각해보라.

문 앞에 놓인 그 물건은, 단순히 '배송된 상품'인가?

아니면,

플랫폼 시스템이 내 집 앞까지 도달했다는 증거인가?

그리고 질문해보라.

내 집 앞은, 지금 누구의 것인가?

다음 화에서는, 우리는 소비를 다시 본다.

우리는 왜 기다리지 못하게 되었는가. 즉시성은 왜 불안의 해법이 되었는가.



[다음 글] 5화. 우리는 왜 기다리지 못하게 되었는가

3화. 도시의 1층은 왜 모두 물류가 되었는가
1.아파트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오른쪽에는 택배 보관함이 줄지어 서 있다. 왼쪽에는 냉장 택배함이 있다. 구석에는 퀵커머스 픽업존 표지판이 붙어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들어가려는데, 배달 라이더가 먼저 나온다. 손에는 보온 가방. 다음 배달지로 향한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탄다. 문이 닫히기 전, 또 한 명의 라이더가 뛰어온다. ”잠깐만요!” 문을 잡아준다. 라이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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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네카쿠배경제학』의 저자이자, 유통 물류 지식 채널 비욘드엑스 대표입니다.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이 물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공급망의 진화 과정과 그 역할을 분석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서 국가 물류 혁신 정책 수립에 기여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