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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AI는 생활 설계권의 대행자다

김철민
김철민
- 11분 걸림

아침 7시. 알람이 울린다.

눈을 뜬다. 휴대폰을 든다.

첫 화면에 뜬다. "오늘의 추천 뉴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상" "오늘의 날씨와 추천 복장"

아침 식사. "자주 주문하는 메뉴 다시 주문하시겠습니까?"

출근길. 지도 앱을 연다. "평소보다 5분 빠른 경로 발견"

점심시간. "이 근처에서 당신이 좋아할 만한 식당"

퇴근 후. "최근 시청 기록 기반 추천 영상"

저녁. "장바구니에 담아둔 상품 20% 할인 중"

잠들기 전. "내일 일정에 맞춰 알람 설정 제안"

하루가 끝났다.

2.  

나는 오늘 무엇을 '선택'했는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무엇을 '스스로' 결정했는가?

3.

10년 전을 떠올려본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했다. '오늘 뭐 먹지?'

냉장고를 열어본다. 식빵이 있다. 계란이 있다. 우유가 있다.

'식빵에 계란 프라이 해먹을까? 아니면 밖에 나가서 먹을까?'

고민한다. 결정한다. 실행한다.

출근길. '오늘은 어느 길로 갈까?'

평소 가던 길로 갈까? 아니면 조금 돌아가지만 카페 앞을 지나갈까?

생각한다. 선택한다.

4.

점심시간. '뭐 먹지?'

동료에게 묻는다. "오늘 뭐 먹을까?"

"김치찌개 어때?" "아니면 중국집?"

고민한다. 의견을 나눈다. 결정한다.

퇴근 후. '오늘은 뭐 하지?'

책을 읽을까? 영화를 볼까? 친구를 만날까? 그냥 쉴까?

생각한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다.

하루는 작은 선택들의 연속이었다.

5.

그런데 지금은?

아침. 앱이 추천한다. "어제와 같은 메뉴 주문하시겠습니까?"

클릭한다.

출근길. 앱이 제안한다. "5분 빠른 경로"

따라간다.

점심. 앱이 보여준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식당"

고른다.

저녁. 앱이 알림 보낸다. "추천 영상"

본다.

하루는 추천의 연속이다.

6.

무엇이 바뀐 것인가?

과거: 내가 생각한다 → 내가 선택한다 → 내가 실행한다.

현재: AI가 분석한다 → AI가 제안한다 → 내가 승인한다 → 내가 실행한다.

주어가 바뀌었다. 선택의 주체가 이동했다.

7.

"그래도 내가 선택하잖아."

맞다. 클릭하는 건 나다.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하지만 정확히 보자.

나는 '선택지 중에서' 고른다. 선택지를 만드는 건 AI다.

AI가 제시한 5개 중에서, 나는 하나를 고른다.

그런데 만약 AI가 제시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6번째 선택지를 알지 못한다.

8.

도구와 대행자의 차이.

과거의 도구: 내가 결정하면, 도구가 실행한다.

"A 식당으로 가자" → 지도가 길을 보여준다.

"이 책을 사자" → 검색 엔진이 책을 찾아준다.

도구는 내 결정을 돕는다.

9.

현재의 AI: AI가 결정하면, 내가 승인한다.

"이 식당이 좋을 것 같아요" → 내가 승인한다.

"이 책을 추천합니다" → 내가 승인한다.

AI는 결정을 대행한다.

차이가 보이는가?

도구는 내 결정을 실행하는 존재다. 대행자는 나를 대신해 결정하는 존재다.

10.

AI 추천은 너무 정확하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영상"

클릭한다. 본다. 정말 좋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식당"

간다. 먹는다. 정말 맛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상품"

산다. 받는다. 정말 필요했다.

AI는 나를 너무 잘 안다.

11.

그래서 거부하기 어렵다.

AI가 추천하는 건 내가 좋아할 확률이 높다.

반대로, AI가 추천하지 않는 건 내가 좋아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굳이 AI 추천을 거부할 이유가 있는가?

없다. 그래서 따른다.

12.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AI는 '과거의 나'를 기반으로 추천한다.

지난주에 본 영상. 지난달에 산 물건. 작년에 갔던 식당.

AI는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한다.

"당신은 이런 걸 좋아했으니까, 이것도 좋아할 것이다."

13.

그런데 생각해보자.

나는 변한다. 취향이 바뀐다. 새로운 걸 원한다.

하지만 AI는 계속 '과거의 나'에 맞춰 추천한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나'를 벗어날 수 없다.

AI가 보여주는 건, 내가 이미 좋아하는 것들뿐이다.

14.

우연이 사라진다.

과거에는 우연이 있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새로운 카페를 발견한다.

친구 추천으로 전혀 모르던 영화를 본다.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예상 밖의 책을 집어든다.

우연은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었다.

15.

그런데 AI 추천에는 우연이 없다.

모든 것이 계산된다. 예측된다. 최적화된다.

"당신이 좋아할 확률 87%"

"당신의 취향과 매칭도 92%"

모든 것이 숫자로 환산된다. 우연의 여지가 없다.

16.

선택의 범위가 좁아진다.

과거: 세상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어떤 식당을 가도 된다. 어떤 영상을 봐도 된다. 어떤 책을 사도 된다.

무한한 선택지. 그 중에서 내가 고른다.

현재: AI가 5개를 보여준다.

"당신에게 추천하는 식당 5곳"

"당신이 좋아할 영상 5개"

무한한 선택지가, 5개로 줄어들었다.

17.

나머지는? 사라진다.

AI가 추천하지 않은 것은, 내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6번째 식당도 있다. 7번째 영상도 있다. 100번째 책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AI가 필터링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좁아졌다. AI가 보여주는 만큼만.

18.

개인화의 역설.

"당신만을 위한 추천" "당신의 취향에 맞춘 콘텐츠"

개인화된다. 나만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비슷한 추천을 받는다.

같은 영상을 본다. 같은 식당을 간다. 같은 물건을 산다.

개인화가 진행될수록, 획일화된다.

19.

선택 능력이 약해진다.

근육을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

선택도 마찬가지다.

AI가 계속 추천해주면, 나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게 된다.

'뭐 먹지?' 고민하지 않는다. AI가 알려준다.

'뭐 볼까?' 생각하지 않는다. AI가 보여준다.

선택 근육이 약해진다.

20.

그래서 AI 없이는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추천이 없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오늘 뭐 먹지?" 막막하다.

"뭘 볼까?" 모르겠다.

AI에 의존하게 된다.

21.

누가 내 하루를 설계하는가?

과거: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설계했다.

오늘 뭐 할지. 누구 만날지. 뭐 먹을지.

작은 결정들이 모여서, 내 하루가 되었다.

현재: AI가 하루를 설계한다.

오전에는 이걸 보세요. 점심은 여기 가세요. 저녁은 이걸 주문하세요.

AI의 제안들이 모여서, 내 하루가 된다.

22.

AI는 최적화한다.

가장 빠른 경로. 가장 맛있는 식당. 가장 재미있는 영상.

모든 것을 최적화한다.

그런데 최적화된 삶이, 좋은 삶인가?

효율적인 하루가, 의미 있는 하루인가?

23.

AI는 '내가 좋아할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내가 필요한 것'은 다를 수 있다.

좋아하는 것 ≠ 필요한 것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 영양이 불균형해진다.

좋아하는 콘텐츠만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좋아하는 것만 하면, 성장하지 못한다.

24.

AI는 내 과거를 알지만, 내 미래는 모른다.

나는 변하고 싶을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AI는 계속 '지금의 나'에 맞춰 추천한다.

AI는 나를 고정시킨다.

25.

그래서 이제 AI는 무엇인가?

도구? 아니다. 도구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

추천자? 그 이상이다. 추천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선택을 설계한다.

AI는 대행자다. 생활 설계의 대행자.

내가 해야 할 결정을, AI가 대신한다.

26.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지금: AI가 추천한다 → 내가 승인한다 → 실행된다.

미래: AI가 결정한다 → 자동 실행된다 → 나는 결과를 받는다.

승인 단계가 사라진다.

"어차피 당신이 좋아할 거니까, 미리 주문해뒀어요."

"어차피 당신이 갈 길이니까, 자동으로 내비게이션 켰어요."

27.

편리하다.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동시에, 선택할 필요도 없다.

결정할 필요도 없다.

내가 할 일이 사라진다.

28.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편하잖아. 정확하잖아. 시간도 절약되잖아.

맞다. 문제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것 하나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하루를 스스로 설계하지 않게 되었다.

29.

아침부터 저녁까지, AI가 제안한다.

뭘 먹을지. 어디 갈지. 뭘 볼지. 뭘 살지.

나는 승인한다. 클릭한다. 따른다.

하루가 흘러간다.

이것은 내 하루인가? 아니면 AI가 설계한 하루인가?

30.

오늘도 당신은 수십 번의 추천을 받을 것이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당신에게 추천하는" "당신을 위한"

클릭할 것이다. 따를 것이다.

너무 자연스럽다.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은 멈춰서, 질문해야 한다.

내 하루는 누가 설계하는가?

나인가, AI인가?

나는 선택하는가, 승인하는가?

내 삶의 설계권은, 여전히 내게 있는가?

다음 글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정리한다.

이동하는 존재에서 배송받는 존재로. 집은 플랫폼이 되고, 도시는 물류 공간이 되고, 시간은 카운트다운이 되고, 소비는 감정 조절이 되고, 노동은 알고리즘이 설계하고, 그리고 AI가 우리의 하루를 대행한다.

우리의 삶은 지금 어디로 배송되고 있는가?


[다음 글]

10화. 우리의 삶은 지금 어디로 배송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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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네카쿠배경제학』의 저자이자, 유통 물류 지식 채널 비욘드엑스 대표입니다.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이 물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공급망의 진화 과정과 그 역할을 분석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서 국가 물류 혁신 정책 수립에 기여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