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배송을 설계한다③] 마이크로허브가 도시를 바꾼다
마이크로허브가 도심에 파고드는 이유, 도시는 준비됐나
물류센터는 도시 밖에 있었다. 수도권 외곽, 이천·용인·김포의 대규모 창고에서 상품이 출발해 도심으로 들어왔다. 배송 거리가 길수록 비용이 올라가고, 탄소가 늘어나고, 시간이 지연됐다. 그런데 지금 그 물류센터가 도시 안으로 들어올 태세다.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 도심 한복판에 들어서는 소규모 물류 거점이다. 글로벌 MFC 시장은 62억 달러(2024)에서 316억 달러(2030)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CAGR) 31.1% (Research and Markets). 이 중 이커머스 부문이 53.7%를 차지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률은 CAGR 13.1%로 가장 빠르다.
물류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도시 밖 대형 허브에서 도시 안 소형 거점으로. 이 변화가 라스트마일의 비용 구조, 배출 구조, 시간 구조를 동시에 바꾸고 있다.
파리, 물류가 도시의 일부가 되다
2025년, 파리 13구에 SEGRO Centre Les Gobelins가 문을 열었다. 7만 5,000㎡ 규모의 도심형 물류 허브다. '물류 호텔(Logistics Hotel)'이라 불린다. 호텔처럼 입주사가 700~1만 4,000㎡ 단위로 공간을 선택해 사용한다. DB Schenker는 이곳을 거점으로 카고바이크와 전기차를 활용한 B2B 도심 배송을 운영한다.
파리만의 실험이 아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200개 이상의 카고바이크 물류 기업이 74개 도시에서 운영 중이다. 프랑스 정부는 2026년까지 경량 전기 배송 차량 3만 대 보급을 목표로 세웠다. 스페인 로그로뇨는 DECARBOMILE 프로젝트를 통해 산블라스 시장 안에 마이크로허브를 설치하고, 도심 배송을 카고바이크로 전환하고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는 URBANE 프로젝트로 마이크로허브 무인 보관함과 경량 전기차를 결합한 B2B 배송 모델을 실험 중이다.
유럽의 도시들이 마이크로허브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앞선 두 편에서 다룬 제로배출구역(ZEZ)이 확산되면서, 디젤 트럭이 도심에 진입할 수 없게 됐다. 대형 트럭 대신 도심 안에 작은 거점을 두고, 거기서부터 전기차와 카고바이크로 배송하는 모델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 된 것이다.
카고바이크, 숫자가 증명한다
마이크로허브의 라스트마일을 담당하는 핵심 수단은 e-카고바이크다. 효율은 데이터로 증명된다.
디젤 밴 대비 CO₂ 배출량 최대 98% 감소. 도심 밀집 지역에서 배송 속도는 밴보다 28% 빠르다. 시간당 배송 건수는 밴의 6~8건 대비 10~12건. 주차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도심 지역에서는 배송 기사의 주차 시간이 전체 배송 시간의 최대 80%를 차지한다는 데이터도 있다(Seattle Curb Data). 카고바이크가 밴을 이기는 이유가 명확하다. 주차할 필요가 없으니 배송에만 집중할 수 있다.
베를린의 BentoBox 파일럿 프로젝트는 라스트마일 배송의 85%를 카고바이크로 전환했다. 함부르크에서는 UPS가 2021년부터 마이크로허브와 카고바이크를 결합한 배송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벨기에 메헬렌은 도심 공사 기간에 BD Logistics의 도시허브를 통해 상점 배송을 통합했다. 결과는 255건의 차량 운행 절감, 100kg CO₂ 감축이었다.
EU 연구에 따르면 도시 내 화물 운송의 최대 50%가 자전거·카고바이크로 전환 가능하다. 아마존은 미국과 유럽에서 70개 이상의 마이크로모빌리티 허브를 운영하며, 2025년 뉴욕에만 e-카고바이크 250대 이상을 추가 배치했다. 세계 최대 이커머스 기업이 밴이 아니라 자전거를 선택했다. 이유는 하나다. 도심에서는 작은 것이 빠르다.
다만 한국의 지형과 기후, 오토바이 중심의 배달 인프라는 유럽식 카고바이크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국형 마이크로허브의 라스트마일은 전기 이륜차와 초소형 전기차가 현실적 대안이다.
한국, MFC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의 퀵커머스 시장은 업계 추산 5조 원 내외 규모다. 이 시장을 지탱하는 인프라가 바로 도심형 MFC다.
배민B마트가 전국에 운영하는 도심형 유통센터는 약 70개. 올리브영은 전국 매장을 사실상의 MFC로 활용한다. '오늘드림' 서비스를 통해 매장 재고를 기반으로 당일 배송을 실행하는 구조다. 매장이 곧 물류 거점이다.
국토교통부도 움직이고 있다. 500㎡ 미만의 주문배송시설을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분류하는 규제 완화를 시행했다. 이전에는 창고나 물류시설로 분류돼 도심 상업지역에 입지가 어려웠다. 이제는 동네 빌딩 지하에도 MFC를 넣을 수 있다. 서울시는 양재에 지하 8층 규모의 도시첨단물류센터를 승인(2024년 2월)했다. 지하는 물류, 지상은 복합 개발. 도시가 물류를 흡수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그러나 한국의 MFC 확산에는 유럽과 다른 맥락이 있다. 유럽은 환경 규제가 MFC를 밀어냈다. 디젤 트럭이 못 들어오니 도심에 거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속도 경쟁이 MFC를 끌어당겼다. 30분 배송, 1시간 배송. 외곽 물류센터에서는 불가능한 속도다. 도심에 재고를 미리 배치해야만 가능하다.
동기는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물류가 도시 안으로 들어온다.
| 구분 | 유럽 (통합형) | 한국 (플랫폼형) |
|---|---|---|
| 도입 동기 | 환경 규제 (ZEZ 확산) | 속도 경쟁 (퀵커머스) |
| 운영 모델 | 복수 업체 공유 (UCC) | 플랫폼별 개별 운영 |
| 대표 사례 | 파리 SEGRO, 메헬렌 BD Logistics | 배민B마트 70개, 올리브영 매장 |
| 라스트마일 수단 | 카고바이크 + 전기차 | 오토바이 + 전기차 |
| 정책 지원 | 도시 단위 통합 설계 | 규제 완화 (500㎡ 미만 근생 분류) |
| 핵심 과제 | 상업성 확보 | 플랫폼 간 통합 |
도시 밀집도, 약점에서 자산으로
시리즈 첫 회 '도시가 문을 닫는다①'에서 한국 아파트의 밀집도가 라스트마일의 병목이라고 지적했다. 공동현관, 경비원 과로, 무인택배함 부족. 모두 구조적 문제다. 그러나 MFC와 결합하면 이 밀집도는 반대로 최대의 자산이 된다.
WEF는 2030년까지 도시 배송 차량이 36% 증가하지만, 전기차 전환과 MFC 도입, 경로 최적화를 병행할 경우 배출량은 30% 감축, 비용은 25% 절감이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BCG는 MFC가 주문당 CO₂를 35~50% 줄인다고 분석한다 (BCG, Sustainability in Last Mile 2025). 라스트마일이 전체 배송비의 50~7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MFC는 비용과 탄소를 동시에 줄이는 거의 유일한 구조적 해법이다.
한국의 조건을 보자. 인구의 91.9%가 도시에 산다. 아파트 1,263만 호가 표준화된 구조로 밀집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5G·IT 인프라. 이미 당일·새벽 배송에 익숙한 소비자. MFC가 작동하기 위한 조건(높은 인구 밀도, 짧은 배송 거리, 디지털 인프라, 높은 이커머스 침투율)을 한국은 이미 전부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 조건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지금 한국의 MFC는 개별 플랫폼이 자기 서비스를 위해 따로따로 운영한다. 배민B마트의 70개 거점은 배민 전용이다. 올리브영 매장은 올리브영 전용이다. 각 플랫폼이 도심 곳곳에 자기만의 작은 창고를 운영하는 구조. 전체 도시 물류의 효율화와는 거리가 있다.
유럽의 도시통합물류센터(UCC)는 다르다. 여러 물류 업체가 하나의 도심 거점을 공유하고, 거기서 통합 배송한다. 메헬렌의 BD Logistics 사례처럼, 도심 진입 차량 수 자체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파리의 SEGRO 물류 호텔도 같은 원리다. 한 건물에 여러 입주사가 들어가고, 각각의 라스트마일을 카고바이크와 전기차로 처리한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이 통합이다. 아파트 단지 지하에 공유형 MFC를 설치하고, 여러 플랫폼의 상품을 한 곳에서 받아 세대별로 분배하는 모델. 2편에서 제기한 '건설사가 물류를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직결된다. 단지 설계 단계에서 공유형 MFC 공간을 확보하면, 공동현관 비밀번호 문제, 경비원 과로 문제, 택배함 부족 문제가 동시에 해소된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플랫폼 간 재고 데이터 공유, 수익 배분 구조, 건설사의 추가 비용 부담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각 플랫폼이 도심 곳곳에 자기만의 작은 창고를 따로 운영하는 현재 모델은 도시 전체로 보면 비효율의 총합이다. 누군가는 통합의 첫 단추를 꿰어야 한다.
도시가 물류를 설계하는 시대
이번 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물류가 도시에 맞추는 시대에서, 도시가 물류를 설계하는 시대로의 전환이다.
'도시가 문을 닫는다①'에서 다룬 제로배출구역은 도시가 물류에 '자격'을 요구하기 시작한 신호였다. 디젤이면 들어오지 마라. 그리고 '아파트가 물류를 결정한다②'에서 다룬 아파트 라스트마일 문제는 도시의 주거 구조가 물류의 한계를 규정한다는 현실이었다. 아파트가 물류를 고려하지 않고 설계됐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허브는 그 해법이다. 물류센터를 도시 밖에서 안으로 옮기고, 대형 트럭을 카고바이크로 바꾸고, 개별 플랫폼의 분산된 거점을 통합 인프라로 전환하는 것. 도시가 물류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구조 자체에 물류를 설계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 전환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 밀집도, 1,263만 호의 표준화된 아파트, 5G 인프라, 퀵커머스로 단련된 소비자. 조건은 갖춰져 있다. 빠진 것은 설계다. 개별 플랫폼의 속도 경쟁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물류 아키텍처를 다시 그리는 일. 건설사가, 지자체가, 정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물류센터가 도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도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가. 준비 여부는 선택이 아니다. 이미 들어오고 있다.
참고 자료
- Research and Markets — 글로벌 MFC 시장 $62억(2024) → $316억(2030), CAGR 31.1%, 이커머스 부문 53.7%, 아시아태평양 CAGR 13.1%
- SEGRO Centre Les Gobelins (2025) — 파리 13구, 75,000㎡ 도심형 물류 호텔, 700~14,000㎡ 모듈형 임대, DB Schenker 등 입주사 카고바이크/EV 배송 운영
- UPS 함부르크 — 2021년부터 마이크로허브+카고바이크 배송 운영
- URBANE (볼로냐, 이탈리아) — 마이크로허브 무인보관함+경량 전기차 B2B 배송
- BD Logistics (메헬렌, 벨기에) — 도심 통합 배송으로 255건 차량 운행 절감, 100kg CO₂ 감축
- Amazon 마이크로모빌리티 — 미국·유럽 70개+ 허브, 2025년 뉴욕 e-카고바이크 250대+ 추가
- Seattle Curb Data — 배송 기사 주차 시간 = 전체 배송 시간의 최대 80%
- WEF — 2030년 도시 배송 차량 +36%, 전기차 전환+MFC+경로 최적화 병행 시 배출 -30%, 비용 -25%
- BCG, Sustainability in Last Mile (2025) — MFC 도입 시 주문당 CO₂ 35~50% 감축
- 국토교통부 — 500㎡ 미만 주문배송시설 제2종 근린생활시설 분류 규제 완화
- 서울시 양재 도시첨단물류센터 — 지하 8층 물류+지상 복합개발 (2024.02 승인)
- 통계청 「2023년 인구주택총조사」 — 아파트 1,263만 호(64.6%), 공동주택 79.2%
연재 순서
[도시가 배송을 설계한다①] 도시가 문을 닫는다
[도시가 배송을 설계한다②] 아파트가 물류를 결정한다
[도시가 배송을 설계한다③] 마이크로허브가 도심에 파고드는 이유, 도시는 준비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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