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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에서 지능의 시대로... 4PL의 재정의

김철민
김철민
- 10분 걸림

"우리 회사 물류 예산은 매년 늘어나는데, 왜 공급망은 더 불안정해질까요?"

지난해 한 제조업체 SCM 담당 임원이 던진 이 질문은, 사실 많은 기업들이 공유하는 고민이다. 팬데믹 이후 운송비가 안정을 찾았음에도 공급망 중단 사례는 2023년 대비 47% 증가했다. 창고를 늘리고 운송 계약을 다변화해도,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은 계속 발생한다.

가트너가 발표한 '4자 물류(4PL) 매직 쿼드런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업계의 응답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보고서가 단순히 "어느 업체가 좋은가"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화주 기업들이 물류 파트너에게 무엇을 원하기 시작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고 있다.

통제권을 사려는 기업들

가트너는 글로벌 4PL 시장이 2023년 6,700억 달러(약 938조 원)에서 2030년 1조 450억 달러(약 1,463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평균 8.4% 성장. 인상적인 수치지만, 정작 주목할 건 따로 있다.

2023년 32%였던 화주의 4PL 도입 의향이 2030년 44%로 높아진다. 기업들이 더 많은 기능을 외부에 맡기려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역설적이게도 답은 "더 강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과거 3PL 시대의 논리는 명확했다. 규모의 경제로 단위당 운송비를 낮추고, 보관 효율을 높이는 것. 하지만 지금 화주들이 원하는 건 다르다. 가트너 조사에서 화주의 73%가 4PL 도입 이유 1순위로 꼽은 항목은 "공급망 중단 시 대응 시간 단축"이었다. "비용 절감"은 3순위로 밀려났다.

한 글로벌 제조사 물류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싸게 운송해 줄 업체'를 찾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보지 못하는 리스크를 먼저 발견해 줄 파트너'를 찾고 있죠."

숫자로 보면 이렇다. 2023년 시장 규모 6,700억 달러, 화주 도입 의향 32%, 주요 동인은 비용 절감(41%). 2030년 전망은? 시장 1조 450억 달러, 도입 의향 44%, 주요 동인은 가시성과 탄력성 확보(73%). 물류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

물류망을 미리 시뮬레이션한다는 것

가트너 매직 쿼드런트 리더 포지션에 오른 독일 기업 4flow의 사례를 보자. 이들의 무기는 iTMS(Intelligent Transportation Management System)라는 플랫폼이다. 핵심은 디지털 트윈 기술.

디지털 트윈이란 고객사의 실제 공급망을 가상 환경에 그대로 복제한 뒤, 다양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이다. "중국 선전 항구가 3일간 폐쇄되면?", "유럽 트럭 운임이 20% 상승하면?", "특정 고객사의 주문이 갑자기 2배 늘어나면?" 같은 상황을 수천 가지 변수와 함께 가상으로 돌려본다.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의 경험이 흥미롭다. 4flow 도입 후 북미와 유럽 40개 거점의 인바운드 물류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관리하게 되면서 운송비가 12% 줄었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과거에는 고객사 생산 계획이 바뀌면 물류팀이 3일 밤샘으로 공급망을 재설계해야 했다. 4flow 도입 후에는 같은 작업이 4시간으로 단축됐다. 물류가 생산 일정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거의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4flow의 접근법은 기존 TMS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통적인 시스템이 '발생한 주문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고민한다면, 디지털 트윈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 대비할까'를 먼저 질문한다. 물류가 사후 처리 기능에서 전략적 사전 계획 도구로 바뀌는 순간이다.

정보 비대칭을 없애는 알고리즘

북미 기업 RXO는 다른 방식으로 리더 그룹에 올랐다. 이들의 강점은 네트워크 설계보다 실행 자동화에 있다.

RXO Connect™ 플랫폼은 연간 1억 건 이상의 운송 데이터를 처리하며 학습한다. 어느 시기에, 어느 구간의, 어떤 화물 운임이 얼마였는지를 모두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시장에서 형성되는 적정 가격을 98.2% 정확도로 예측한다.

물류 시장의 고질적 문제는 정보 비대칭이다. 화주는 "내가 지금 제시받은 운임이 적정한가?"를 모른다. 운송사는 "언제 어디서 화물이 나올까?"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 간극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이 엄청나다.

RXO의 알고리즘은 이 불투명성을 제거한다. 화주에게는 "지금 시장에서 이 구간 운임은 이 정도입니다"라는 투명성을 제공하고, 운송사에게는 "당신 차량이 비는 시점에 이 구간 화물이 있습니다"라는 예측성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거래가 자동으로 성사된다.

4flow와 RXO, 두 회사의 차이는 명확하다. 4flow는 전략적 네트워크 최적화에 강하다.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으로 재설계 시간을 95% 단축시킨다. 복잡한 글로벌 제조 공급망을 다루는 기업에 적합하다. RXO는 실행 단계 자동화가 강점이다. 실시간 가격 예측 알고리즘으로 정시 도착률 98%를 달성한다. 변동성 높은 소비재나 이커머스 쪽에 강하다.

한국 시장, 중립성의 딜레마

가트너 리포트가 국내 업계에 던지는 질문은 불편하다. "국내 대형 물류사들도 글로벌 4PL 리더들처럼 중립적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4flow와 RXO의 공통점이 있다. 자체 운송 자산을 거의 보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주에게 "우리 트럭을 쓰세요"가 아니라 "시장에서 가장 좋은 옵션을 찾아드리겠습니다"를 제안한다. 이 중립성 때문에 화주들이 기꺼이 민감한 공급망 데이터를 공유한다.

국내 상황은 다르다. 주요 물류사의 경우 계열사 물량이 전체 매출의 60~75%를 차지한다. 안정적 물동량 확보라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외부 화주 입장에서는 "이 회사가 정말 우리 최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트너 데이터를 보면, 4PL 전문 기업들의 평균 고객 유지율은 94%다. 반면 자산 보유형 물류사가 4PL 사업을 겸하는 경우는 82%로 낮았다. 화주들은 생각보다 민감하게 파트너의 이해관계를 따진다.

한 국내 화주기업 물류 담당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대형 물류사에 컨설팅을 의뢰했는데, 나중에 보니 결론이 결국 '우리 창고를 쓰세요'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이건 컨설팅이 아니라 영업이구나."

국내 물류사들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일부는 4PL 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거나, 외부 캐리어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시도 중이다. 하지만 조직 문화와 성과 평가 체계까지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중립성 확보는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알고리즘이 결정하는 시대

가트너가 2025년에야 4PL 매직 쿼드런트를 처음 발간한 이유는 명확하다. 이제 시장이 4PL을 물류의 한 형태가 아닌, 공급망 의사결정 구조 자체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물류 기업의 경쟁력은 보유 차량 대수나 창고 면적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알고리즘의 정교함, 데이터를 실행 가능한 통찰로 바꾸는 속도, 그리고 화주에게 투명하고 중립적인 파트너로 인식되는 신뢰도가 핵심이 될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 도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조직 전체가 데이터 중심으로 의사결정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의 핵심에는 "우리의 성공이 아닌, 고객의 성공을 먼저 생각한다"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가트너의 이번 보고서는 그 전환이 이미 시작됐음을,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음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 Gartner, "Magic Quadrant for Fourth-Party Logistics, Worldwide" (2025)
  • 주요 기업 공시 자료 및 사례 연구
  • 환율: 1달러 = 약 1,400원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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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네카쿠배경제학』의 저자이자, 유통 물류 지식 채널 비욘드엑스 대표입니다.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이 물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공급망의 진화 과정과 그 역할을 분석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서 국가 물류 혁신 정책 수립에 기여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