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이 갈라진다②] 바다가 넘친다

해운 공급과잉과 생존의 방정식

2025년 4분기,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A.P. Moller-Maersk)의 해운 부문이 1억5,300만 달러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까지 흑자였다. 같은 분기 전년에는 16억 달러 흑자였다. 1년 만에 부호가 바뀌었다.

머스크는 2026년 2월 사무직 1,000명 감원을 발표했다. 사무직 6,000명의 15%다. 연간 1억8,000만 달러를 아끼겠다는 계산이다. 2026년 실적 전망은 "15억 달러 적자에서 10억 달러 흑자 사이." 세계 1위 해운사가 적자와 흑자 사이 25억 달러 구간을 제시한다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6위 ONE(Ocean Network Express)도 2025년 4분기 8,400만 달러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업계 전체가 흔들린다.

1편에서 공급망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고 썼다. 지도가 바뀌면 바닷길도 바뀐다. 바닷길이 바뀌는데, 바다 위에는 배가 넘친다. 지금 해운 시장은 불황이 아니라 구조적 재가격(structural repricing) 국면이다.

팬데믹이 남긴 유산

2020~2022년, 코로나19가 만든 물류 대란은 해운사에 전례 없는 호황을 안겼다. 컨테이너 운임이 10배 올랐고, 선사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거뒀다. 그 돈은 배로 갔다. 신조 발주가 폭증했다.

2026년 1월 기준, 글로벌 컨테이너선 오더북(수주잔량)이 사상 처음 1,000만 TEU를 넘었다 (Alphaliner). 현재 운항 선대 3,369만 TEU의 31.6%다. 2010년 이후 최고다 (Clarksons Securities). 직전에 이 수준을 넘었던 것은 2004~2009년이다. Linerlytica는 경고한다. "당시 공급과잉은 해소에 10년이 걸렸다."

인도 스케줄을 보면 구조가 선명하다. 2025년 210만 TEU, 2026년 170만 TEU로 잠시 숨을 고르지만, 2027년 280만 TEU, 2028년 330만 TEU로 다시 급증한다. 매년 전체 선대의 5~7%가 새로 투입되는 셈이다. Braemar는 2025~2028년 평균 공급과잉률을 27%로 전망한다.

그런데 배가 빠지지 않는다. 2025년 상반기 해체된 컨테이너선은 10척, 총 1,787 TEU. 역사적 저점이다 (Alphaliner). 선령 20년 이상 선박이 전체의 32%를 차지하고, 2030년에는 45~50%로 늘어날 전망이다 (Braemar). 해체할 배는 쌓이는데 아무도 부수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팬데믹 호황기에 선사들이 선박 부채를 대부분 갚았다. 부채가 없으니 해체해서 빚을 갚을 유인도 없다. 여기에 피더(feeder) 네트워크 운영에 중소형 선박이 필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23년 이후 연이은 위기—홍해 후티 반군 공격, 파나마 운하 가뭄, 미국 항만 파업, 관세 선적(frontloading)—에서 예비 선복이 매번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버릴 수 없는 보험이 된 것이다.

운임은 바닥을 뚫었다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는 따라가지 못한다. 2026년 수요 증가 전망치는 2.1%에 그친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025년 평균 1,581포인트, 전년 대비 37% 급락했다. 주력 항로인 미주 서안 운임이 49%, 유럽 노선이 49%, 미주 동안이 42% 하락했다.

아시아-미서안 스팟운임은 FEU당 1,460달러까지 떨어졌다. 손익분기점 아래다 (Lloyd's List, 2025.09). Freightos는 "컨테이너 운임 다운사이클 진입"을 선언했고, Drewry는 이 국면을 "구조적 리셋(structural reset)"이라 부른다.

숫자를 정리한다.

구분 MSC 머스크 CMA CGM HMM
선대 규모 720만 TEU 461만 TEU 414만 TEU 100만 TEU
오더북/선대 비율 31% 15% 45% 6%
Q4 2025 해운 비공개 -1.53억$ 비공개 +3,173억원
2026 전략 피더선단 대규모 교체 감원·비용절감 수에즈 조기 복귀 신조 12척 발주

(출처: Alphaliner, Clarksons, 각 사 실적 공시, 2026.01~02 기준)

수에즈, 돌아갈 것인가

2023년 11월부터 2년간,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으로 수에즈 운하가 사실상 폐쇄됐다. 선박들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우회했다. 아시아-유럽 항로에 평균 2~3주가 추가됐다. 이 우회가 역설적으로 과잉 선복을 흡수했다. 희망봉 우회는 전체 컨테이너선 수요를 약 10%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었다 (BIMCO).

2025년 9월 29일, 후티 반군의 마지막 공격이 있었다. 11월 11일 공격 중단을 선언했다. 2025년 12월, 머스크가 2년 만에 처음으로 수에즈를 통과시켰고, CMA CGM은 2026년 1월부터 정규 서비스를 수에즈 경유로 전환했다. 머스크 CEO 빈센트 클레르크는 말한다. "휴전이 유지된다면 홍해 복귀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러나 2026년 1월 첫 주 기준, 수에즈 운하 통행량은 2023년 대비 여전히 60% 낮다 (BIMCO). 컨테이너선 통과량은 86% 감소한 상태다. 업계가 조심스러운 이유는 "이중 교란(double disruption)" 위험 때문이다. 너무 빨리 복귀했다가 공격이 재개되면 다시 우회해야 한다. 업계는 최소 6개월 테스트 기간을 예상한다.

문제는 복귀가 본격화될 경우의 충격이다. 희망봉 우회로 흡수되던 선복이 한꺼번에 시장에 풀린다. BIMCO는 수에즈 전면 복귀 시 컨테이너선 수요가 약 10%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미 과잉인 시장에 10%의 공급 충격이 추가되는 셈이다. Seavantage는 이를 "과잉선복 충격(network shock)"이라 표현한다.

물리적 혼란도 불가피하다. 수에즈를 경유하는 선박과 여전히 희망봉을 도는 선박이 동시에 유럽 항만에 도착하면, 2~3주간 대규모 체선이 발생한다 (Sea-Intelligence). 운임은 떨어지는데 체선비는 올라가는 이중 부담이다. 화주 입장에서 2026년은 운임 하락의 수혜를 누리면서도 운항 불확실성은 더 높아지는 역설적 시장이다.

과잉의 역설

그런데 '과잉'이라는 단어에는 함정이 있다. 지난 5년을 되짚어 보자.

2020년, 팬데믹으로 물류가 마비됐을 때, 여유 선복이 없었다면 세계 무역은 더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2023~2024년, 홍해가 막히자 선사들은 예비 선박을 투입해 아프리카 우회 항로를 유지했다. 2024년, 파나마 운하 가뭄으로 통행이 32% 줄었을 때도 대체 경로에 투입할 선박이 있었다. 2025년, 관세 선적(frontloading) 물량이 급증했을 때도 과잉 선복이 수요를 흡수했다.

시장이 안정적일 때의 과잉은, 위기가 올 때의 보험이다. 해운업의 정의가 바뀌었다. '과잉 선복'은 더 이상 비효율이 아니라 위기의 빈도가 높아진 세계에서의 생존 전략이다. 과잉을 줄이면 평시 수익성은 좋아지지만, 다음 위기에 취약해진다. 과잉을 유지하면 평시에 출혈 경쟁을 피할 수 없지만, 위기 대응력은 높아진다. 선사들이 해체를 미루는 것은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위기의 빈도가 높아진 세계에서는, 예비 용량이 곧 경쟁력이다.

한국 해운의 비대칭

이 구조 속에서 한국 해운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HMM은 2025년 매출 10조8,914억 원, 영업이익 1조4,612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58% 줄었지만, 4분기에 글로벌 선사들이 적자로 전환한 와중에 홀로 영업이익률 11.7%를 유지했다. 항로 효율화와 고수익 화물 유치가 수익성을 방어한 배경이다.

그런데 HMM의 오더북은 선대의 6%에 불과하다. MSC 31%, CMA CGM 45%, COSCO 38%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2030년 목표 선대 155만 TEU에 현재 선대가 100만 TEU. 격차를 좁히려면 대규모 신조 발주가 불가피하다. 최근 1만3,000TEU급 친환경 컨테이너선 12척을 국내 조선사에 3조5,000억 원 규모로 발주한 것은 그 시작이다.

한국 조선업은 이 구도에서 수혜자다. 글로벌 오더북 1,000만 TEU 시대의 수주는 상당 부분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으로 향한다. 특히 LNG·메탄올 이중연료 선박 등 친환경 고부가 선종에서 한국 조선소의 기술 우위는 뚜렷하다. 해운사의 출혈이 조선소의 호황으로 연결되는 비대칭 구조다. 그러나 이 호황도 영원하지 않다. Braemar에 따르면 과잉 선복 우려와 신조선가 상승이 2026년 이후 발주를 둔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해운 다운사이클이 1~2년 시차를 두고 조선 수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업계의 오래된 패턴이다.


파도를 피할 수 없다면 배를 바꿔야 한다. 해운의 다운사이클은 구조적이다. 그러나 구조적 변화에는 구조적 기회가 따른다. 문제는 과잉이 아니라, 그 과잉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다. 공급망이 갈라지고, 바다가 넘치는 이 시점에서, 한국은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는가.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제조업의 전략적 위치는 높아지고 있지만, 그 위치가 물류 경쟁력으로 자동 전환되지는 않는다. 다음 편에서 한국의 카드를 펼쳐본다.


참고 자료

  • A.P. Moller-Maersk, 2025 Annual Report & 2026 Guidance (2026.02.05)
  • ONE(Ocean Network Express), Q4 2025 실적 발표
  • Alphaliner, Weekly Newsletter & Fleet Statistics (2026.01)
  • Clarksons Securities, Orderbook-to-Fleet Ratio Data (2025)
  • Braemar, Quarterly Container Fleet Statistics (2025.07)
  • Linerlytica, Container Market Update (2025.08)
  • Lloyd's List, "The rise and fall of container spot rates" (2025.09)
  • Freightos, "Container Shipping Overcapacity & Rate Outlook 2026" (2026.01)
  • Drewry, Container Market Outlook (2025)
  • Maritime Executive, "Containership Orders Reach New High" (2025.08)
  • 하나증권, HMM 분석 리포트 (2025.07)
  • 물류트렌드 2026 (BEYONDX)

‌[연재순서]

[공급망이 갈라진다①] 30년 공급망이 무너진다ㅣ관세 전쟁이 다시 그리는 글로벌 물류 지도

[공급망이 갈라진다②] 바다가 넘친다ㅣ해운 공급과잉과 생존의 방정식

[공급망이 갈라진다③] 한국의갈라진 공급망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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