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이 갈라진다③] 한국의 카드

갈라진 공급망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

2025년,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 7,000억 달러를 돌파했다(산업통상자원부). 7,097억 달러. 세계에서 여섯 번째다. 반도체 1,734억 달러(+22.2%), 자동차 720억 달러(+1.7%), 선박 320억 달러(+24.9%). 모두 역대 최대다. 무역흑자 780억 달러는 2017년 이후 최고다.

부산항도 2,488만 TEU로 역대 최대를 찍었다 (부산항만공사). 3년 연속 기록 경신이다. 환적 물동량 1,410만 TEU는 전체의 57%. 세계 2위 환적항의 위상이다. 제미니(Gemini) 얼라이언스가 북중국발 화물을 부산에서 환적하도록 노선을 개편했고, HMM의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도 2026년 4월부터 부산 환적 기능을 강화한다.

숫자만 보면 한국은 건재하다.

그러나 1편에서 30년 공급망이 무너지고 있다고 썼고, 2편에서 바다가 넘치고 있다고 썼다. 공급망이 갈라지는 세계에서, 한국의 수출 기록은 강점이자 취약점이다. 수출이 클수록 공급망 변동에 노출되는 면적이 넓기 때문이다.

질문은 하나다. 한국은 이 재편에서 설계자인가, 하청업자인가.

가진 카드

한국의 카드는 세 장이다. 반도체, 배터리, 지리다.

반도체. 한국과 대만이 10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의 100%를 생산한다 (Synergy Associates, 2025).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데이터센터용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글로벌 선두다. 미국이 공급망 안보를 말할 때, 한국은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2025년 3월 한국 정부는 반도체·AI·배터리·로봇 분야에 340억 달러 규모의 지원 펀드를 발표했다 (RAND Corporation).

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37%를 점유한다 (CSIS). 미국에 신설되는 40개 배터리 공장 중 11곳에 한국 기업 3사가 참여한다. IRA(인플레이션감축법)가 요구하는 '비중국 공급망'에서, 한국은 핵심 파트너다.

지리. 부산항은 동북아의 마지막 관문이다. 미국·일본행 화물의 환적 거점이자, 중국·아세안을 잇는 교차로다. 2025년 부산항 수출입 비중은 중국 25%, 미국 17%, 일본 11%로, 양쪽 블록에 모두 걸쳐 있다 (부산항만공사). 인천공항은 AI 서버·반도체·배터리·제약 등 고부가 항공화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합의(2023년)는 이 카드에 제도적 뒷받침을 더했다. 한국·일본은 IRA 이후 미국 클린테크 분야 최대(200억 달러)·3위(90억 달러) 투자국이다 (PIIE). 프렌드쇼어링 공급망에서 한국의 위치는 '선택지'가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다만, 대체 불가능하지는 않다.

없는 카드

그런데 카드를 들여다보면, 빈 칸이 선명하다.

첫째, 물류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없다. 세계 25대 포워더에 한국 기업은 없다. LX판토스가 해상 부문 8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 최선이다. 한국 물류기업 130개사의 2024년 총 매출은 106조 원이다. DHL 단일 기업의 연 매출이 약 37조 원이다. 한국의 수출 규모는 세계 6위인데, 그 수출을 실어 나르는 물류 기업의 역량은 세계 25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제조업과 물류업의 비대칭이다.

둘째, 해외 물류 인프라가 절대 부족하다. 한국해양진흥공사(KOBC)는 글로벌 물류·공급망 투자 펀드 2,140억 원을 조성했다(KOBC). 이 금액은 DSV가 DB 쉥커를 인수한 금액(약 16조 원)의 1.3%다. 국가 물류 전략의 스케일이 글로벌 경쟁과 맞지 않는다. KOBC는 베트남 호치민에 8,000평 물류센터를 2026년 하반기 가동 예정이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이 격차는 기업 전략만으로 메워지지 않는다. 국가 물류 전략의 스케일업이 필요하다.

셋째, 중국 의존이 깊다. 대중 수출이 1,308억 달러로 전체의 18.4%를 차지한다. 배터리 핵심광물(리튬·코발트·니켈)의 정제·가공은 중국에 집중돼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탈중국 공급망'을 완성하려면, 한국 자체가 중국 공급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양쪽에 걸쳐 있다는 것은 강점이기도 하지만, 양쪽 모두에서 압박받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의존을 줄이는 과정 자체가 단기 비용을 만든다. 실제로 2025년 대미 수출은 3.8% 감소했고, 대중 수출도 1.7% 감소했다. 양대 시장이 동시에 줄었는데, 아세안(+7.4%)과 EU(+3.0%)가 이를 상쇄했다. 수출 시장 다변화가 이미 시작됐지만, 그 다변화를 물류적으로 뒷받침할 해외 거점은 턱없이 부족하다.

커넥터인가, 하청업자인가

공급망이 블록화될 때, 국가의 선택은 두 가지다. 특정 블록에 귀속되는 것(Aligner), 또는 블록 사이를 연결하는 것(Connector)이다.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커넥터 역할에 적합하다. 반도체는 미국·일본 블록에 필수이면서 중국에도 수출한다. 자동차는 미국 관세 속에서도 EU·CIS·아세안으로 시장을 다변화했다. 부산항은 양 블록의 화물을 모두 처리한다.

문제는 이 커넥터 역할을 뒷받침할 물류 역량이다.

비교 항목 한국 대만 베트남 인도
공급망 핵심 자산 반도체·배터리·자동차 첨단 반도체(파운드리) 저비용 제조 거점 내수 시장·IT 서비스
물류 허브 부산항(세계 7위) 카오슝항(세계 15위) 호치민·하이퐁(성장 중) JNPT(개발 중)
글로벌 물류기업 없음(포워더 25위권 외) Evergreen(해운) 없음 없음
공급망 포지션 커넥터(양 블록 연결) 미국 블록 귀속 중국+1 수혜 독자 성장
핵심 리스크 대중 의존·물류 격차 대만해협 지정학 인프라 병목 관료주의·인프라

(출처: 각국 항만공사, PIIE, CSIS, 산업통상자원부 종합)

한국의 이점은 명확하다. 대만은 첨단 반도체에 특화됐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극심하다. 베트남은 '차이나+1' 수혜를 누리지만, 인프라가 병목이다. 인도는 규모가 크지만, 물류 효율이 낮다. 한국은 제조·항만·기술을 모두 갖춘 드문 경우다.

그러나 물류 기업 없이 커넥터는 불완전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지적이 정확하다. "공급망이 재편될 때, 화주(제조기업)와 물류기업이 동반으로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 제조업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노드가 되더라도, 그 노드를 연결하는 물류 네트워크가 외국 기업에 의존한다면 커넥터가 아니라 하청업자에 머문다.

다만 빈틈이 곧 기회이기도 하다. AI 기반 공급사슬관리(SCM) 시장은 2025년 99억 달러에서 2034년 1,925억 달러로, 연 39% 이상 성장이 전망된다(물류트렌드 2026). 공급망 가시성(visibility), 경로 최적화, 원산지 추적 기술은 한국이 강점을 가진 IT·반도체 역량과 직결된다. 물류의 경쟁력이 '규모'에서 '기술'로 이동하고 있다면, 한국이 추격할 여지가 열린다. AI는 물류기업이 없어도 네트워크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 첫 번째 도구다.


30년 동안 효율성을 위해 설계된 공급망이, 안보를 위해 재설계되고 있다.

1편에서 지도가 바뀌고 있다고 썼다. 2편에서 바다가 넘치고 있다고 썼다. 지도가 바뀌고 바다가 넘치는 이 시점에서, 한국이 가진 카드는 강력하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부산항. 그러나 카드를 가진 것과 카드를 쓸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카드를 쓰려면 물류가 필요하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물류의 경쟁력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한국은 블록 사이의 다리가 아니라 블록에 끼인 섬이 된다.

문제는 과잉이 아니라 그 과잉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라고 2편에서 썼다. 같은 논리가 한국에도 적용된다. 문제는 카드가 아니라, 그 카드를 실행할 수 있는 물류 체력이다.

이 커넥터 경쟁에서 한국은 플랫폼이 될 것인가, 경유지가 될 것인가.

다리는 스스로 놓이지 않는다. 국가 전략과 기업 전략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공급망이 갈라질 때, 갈라진 틈에 서는 자가 다리를 놓는다.


참고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 「2025년 연간 및 12월 수출입 동향」 (2026.01.01)
  • 부산항만공사(BPA), 「2025년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 실적」 (2026.02.02)
  • CSIS, "Friendshoring the Lithium-Ion Battery Supply Chain" (2024.10)
  • PIIE, "US-Japan-Korea Trilateral Cooperation" (2023.08 / 2025.01 업데이트)
  • RAND Corporation, "The Republic of Korea Is a Key Partner" (2025)
  • Synergy Associates, "Strengthening the Global Semiconductor Supply Chain" (2025.05)
  • NBR, "U.S.-China EV Battery Competition and the Role of South Korea"
  • ITIF, "South Korea Should Choose Friends Over Foes for Semiconductor Production" (2025.09)
  • 한국해양진흥공사(KOBC), 글로벌 물류·공급망 투자 펀드 조성 현황
  •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대한상의 2026 물류시장 전망 세미나 발표 (2025.12)
  • 물류트렌드 2026 (BEYONDX)

‌[연재순서]

[공급망이 갈라진다①] 30년 공급망이 무너진다ㅣ관세 전쟁이 다시 그리는 글로벌 물류 지도

[공급망이 갈라진다②] 바다가 넘친다ㅣ해운 공급과잉과 생존의 방정식

[공급망이 갈라진다③] 한국의갈라진 공급망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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