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sight Stream
  • Nexus Weekley
  • BX Premium
  • what's X
  • 로그인

공장이 만든 학교, 공장이 사라진 세상

김철민
김철민
- 18분 걸림

오전 8시 40분.

종이 울린다. 복도를 뛰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간다. 각자의 자리에 앉는다. 선생님이 들어오면 반장이 "차렷, 경례"를 외친다. 수업이 시작된다.

45분 후, 종이 다시 울린다. 수업이 끝난다. 쉬는 시간 10분. 다시 종이 울리면 다음 수업이다.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과목들은 섞이지 않는다. 수학 시간에 역사 이야기를 꺼내면 "그건 사회 시간에 해라"는 말이 돌아온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오후 수업이 이어진다. 하루의 마지막 종이 울리면 청소 시간이다. 정해진 구역을 정해진 방식으로 청소한다. 종례가 끝나면 아이들은 학원 버스를 타거나, 학원으로 직접 향한다.

한국의 학교에서 하루가 지나가는 방식이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강남이든 지방이든, 공립이든 사립이든 이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른들에게 이 풍경은 너무 익숙해서 의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본인들도 그렇게 학교를 다녔고, 부모도, 조부모도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가 생긴다.

이 풍경은 언제, 누가, 왜 만들었는가.

학교의 탄생

1760년대, 영국 북부의 도시들에서 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방직기가 발명되고, 증기기관이 보급됐다. 맨체스터와 버밍엄의 공장주들에게는 사람이 필요했다. 농촌에서 올라온 수천 명이 공장 앞에 섰다.

문제가 있었다. 해가 뜨면 밭에 나가고 해가 지면 돌아오던 농부들에게, 오전 6시 출근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지각도 했고, 멋대로 쉬기도 했고,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았다. 공장주 입장에서 이들은 좋은 노동력이 아니었다.

공장에 필요한 인간은 따로 있었다. 시간에 맞춰 나타나는 사람. 지시를 따르는 사람. 반복 작업을 불평 없이 해내는 사람. 위계를 받아들이는 사람.

이 인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릴 때부터 훈련시키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1870년, 영국 의회는 초등교육법(Elementary Education Act)을 통과시켰다. 법안을 주도한 자유당 의원 윌리엄 포스터(William Forster)는 의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초등교육을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우리 산업의 번영에 달려 있다. 기초 교육 없이 장인들에게 기술 교육을 주는 것은 소용없다.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미숙련 노동자에 불과하다."

이 발언에서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이 어떤 인간으로 자라는가가 아니다. 공장과 산업에 어떤 인력이 필요한가다. 법안의 배경에는 당시 산업계의 압력도 있었다. 경쟁국인 프러시아와 미국이 초등교육을 체계화하면서 숙련 노동력을 확보해 가자, 영국 산업가들이 의회에 교육 제도 정비를 요구했다. 학교는 처음부터 그 필요로 태어난 기관이었다.

학교가 나쁜 기관이라는 뜻은 아니다. 당시의 필요에 맞게 설계됐다는 것이다. 문맹인 노동자보다 글을 읽고 셈을 할 줄 아는 노동자가 공장에 더 유용했다. 기초 교육이 확산되면서 실제로 생산성이 높아졌다. 학교는 그 시대에 옳은 기관이었다.

설계도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종이 울리면 수업이 시작되고 끝난다 — 공장 사이렌의 복제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어도 종이 울리면 멈추는 법을 배운다. 내면의 흥미가 아니라 외부의 신호에 반응하도록 훈련된다.

앞에 선생님이 서고 학생들이 줄지어 앉는다 — 공장 생산라인의 구조다. 지식의 흐름은 위에서 아래, 앞에서 뒤로 일방적이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는 서로 섞이지 않는다 — 공장 분업 체계의 복제다. 현실에서는 모든 문제가 여러 지식을 동시에 요구하지만, 학교는 이것을 인위적으로 쪼갠다.

시험은 정해진 답을 정해진 시간 안에 써내는 능력을 검사한다 — 공장의 품질 검사다. 창의적인 답, 새로운 관점, 질문 자체를 바꾸는 시도는 이 검사에서 점수를 받지 못한다.

졸업장은 이 모든 검사를 통과했다는 인증이다 — 완성품의 출하 증명서다. "이 사람은 우리 시스템의 기준을 통과했습니다. 고용해도 됩니다."

학교와 공장은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두 기관이다. 투입물만 다르다. 공장은 원자재로 제품을 만들고, 학교는 아이로 노동자를 만든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모델은 빠르게 전 세계로 퍼졌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이 비슷한 시기에 의무교육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근대 학교 체제, 이후 경제 개발 시기에 강화된 입시 중심 교육.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구조는 같았다. 산업에 필요한 표준화된 인력을 대규모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이었다.

15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이유

1870년이면 150년도 넘은 이야기다. 그사이 학교는 많이 바뀌지 않았는가.

체벌이 사라졌다. 토론 수업이 늘었다. 칠판이 전자칠판이 됐다. 창의 교육, 진로 교육이 교과 과정에 들어왔다. 한국의 2022 개정 교육과정은 "미래 역량 강화"를 명시적 목표로 내걸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한국 교육의 성과는 실제로 인상적이다. OECD가 시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들은 수십 년째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22년 PISA 결과에서 한국은 수학 3위, 읽기와 과학에서도 상위권이었다. 이것은 수치가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이 성과에 기여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1960년대 문맹률이 높았던 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를 보이는 나라로 바뀐 것은 학교 교육의 역할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가 하는 일은 직업 훈련만이 아니다. 또래와 어울리며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다른 배경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동체 감각을 익힌다. 부모와 분리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이 기능들은 AI가 대신할 수 없고, 학교가 아니면 대체하기 어렵다.

학교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가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성과를 위해 치른 비용이 얼마인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가 있다. 한국 고등학생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3분이었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22분이다. 2시간 이상 차이가 난다.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청소년은 절반을 넘는다. 수면이 부족한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공부였다. 학교 수업, 학원, 숙제.

여기에 핀란드와의 비교가 의미 있다. 핀란드 학생들은 주당 약 30시간을 공부하고 PISA에서 한국과 비슷한 최상위 성적을 낸다. 한국 학생들은 주당 약 50시간을 공부하고 비슷한 성적을 낸다. 같은 결과를 위해 한국 학생들은 20시간을 더 쓴다. 그 20시간이 수면, 운동, 놀이, 탐색의 시간에서 빠져나온다.

PISA가 측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학 문제를 주어진 시간 안에 풀고, 독해 지문에서 정보를 추출하고, 과학 개념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AI 시대에 가장 가치 있는 능력이냐는 것은 다른 질문이다.

PISA는 비판적 사고,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 자신의 생각을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직접 측정하지 않는다. OECD 자체 조사에서 한국 청소년의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은 OECD 평균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2021년 보고서 기준 한국 25.6%, OECD 평균 47%). 시험 점수가 높은 학생이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에서는 평균 이하였다. PISA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능력과, AI가 처리할 수 없는 능력 사이에 어느 정도 겹치는지는 측정되지 않았다.

지금 아이들의 실제 시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동체 감각이나 정체성 형성이 아니다. 수학 문제집, 영어 단어 암기, 내신 시험, 수능 준비다. 학교의 이상은 전인 교육이지만, 현실은 시험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 시험이 측정하는 것은 150년 전 포스터가 설계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정확하게, 더 빠르게, 더 많이 기억하는 능력.

도구가 바뀌었을 뿐, 구조는 그대로다. 칠판이 전자칠판이 됐다고 학교의 본질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수동 공구가 전동 공구로 바뀌었다고 공장이 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왜 바뀌지 않았는가.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사회는 150년간 지속됐다. 공장은 계속 돌아갔고, 사무실은 계속 채워졌다.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지시를 따르고, 정해진 일을 반복적으로 해내는 인간은 150년 내내 필요했다. 학교가 그런 인간을 만들어내는 한, 학교의 설계를 바꿀 이유가 없었다.

구조도 느리다. 학교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느리게 바뀐다. 교육과정을 바꾸려면 전국의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 교사들을 재교육해야 한다. 대학 입시 방식과 연동해야 한다. 한국에서 교육과정 개정 주기는 통상 5~10년이다. 지금 교육과정을 바꾸기로 결정하면, 새 교과서가 모든 학교에 보급되고 교사들이 충분히 훈련받는 데 또 수 년이 걸린다. 그 사이 세상은 또 바뀐다.

ChatGPT가 출시된 것이 2022년 11월이다. 한국 교육부가 AI 교육 강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후였다. 실제 모든 학교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가 일어나려면 또 몇 년이 걸린다. 기술이 바뀌는 속도와 교육이 바뀌는 속도 사이에는 구조적인 간극이 있다.

그 간극 사이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닌다. 지금 중학생이 대학을 졸업하는 2030년대 초반에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지,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사람들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학교는 기다린다. 조금 더 확실해질 때까지. 그 사이 세상은 더 빠르게 바뀐다.

시스템은 항상 그것이 필요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150년을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산업사회가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환경이 바뀌고 있다.

수요가 사라질 때

2010년대 초반만 해도, AI가 대체할 직업을 예측한 연구들은 공장 라인의 조립 작업, 데이터 입력, 단순 반복 업무를 먼저 꼽았다. 두뇌 노동, 그중에서도 고학력이 필요한 화이트칼라 직종은 한동안 안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 전망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2013년 옥스퍼드 마틴스쿨 연구진이 발표한 "고용의 미래(The Future of Employment)"는 당시 가장 많이 인용된 자동화 연구였다. 702개 직업의 자동화 가능성을 분석한 이 보고서는 대체 위험이 높은 직종으로 텔레마케터, 재봉사, 검침원 같은 반복 작업직을 꼽았다. 반면 창의적 판단과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요한 직종은 자동화 위험이 낮다고 분류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합리적인 분석이었다. AI가 언어를 유창하게 생성하고 논리적 추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2013년에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데이터는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앞 장에서 확인한 것처럼 화이트칼라 직종의 AI 직무대체율은 2027년까지 71%에 달할 전망이고, AI 노출 직종 신입 채용은 이미 3년 사이 13% 감소했다. AI는 공장 라인보다 사무실을 먼저 파고들었다. 두뇌가 근육보다 먼저 밀려난다는 역설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학교는 기업을 채울 인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이었다. 기업에 마케터가 필요하면 마케팅 전공이 생겼고, 회계사가 필요하면 회계학과가 생겼다. 기업이 영어 잘하는 사람을 원하면, 학교는 영어 교육을 강화했다. 이 공급-수요의 연결이 수십 년간 작동했다. 학교 시스템에 충실하면 취업이 되고, 취업이 되면 삶이 안정된다는 공식이 현실에서 작동했다. 그래서 학교 시스템은 정당성을 유지했다.

그 정당성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AI가 분석하고 작성하고 계산하는 세상에서, 기업이 사람에게 원하는 것이 달라진다. AI가 처리한 결과를 해석하고,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결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는 능력. 이런 것들은 암기력이나 계산 속도가 아니다.

그런데 수요 자체가 줄고 있다. 기업이 AI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학교가 150년간 만들어온 "공장형 인력"의 수요는 함께 줄어든다. 학교가 아무리 잘 작동해도, 졸업생이 들어갈 자리 자체가 좁아진다.

학교는 지금도 암기력과 계산 속도를 훈련시키고 있다. 더 정교하게, 더 체계적으로. 공급과 수요가 어긋나고 있다. 학교는 여전히 예전의 수요에 맞춰 인력을 만들고 있고, 기업은 그것과 다른 능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이 시스템에 쏟아붓는 돈의 규모가 있다. 통계청이 2025년 3월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29조 2,000억 원이었다. 전체 학생 수는 줄었는데 사교육비 총액은 늘었다. 아이는 줄어드는데 1인당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사교육 참여율은 80.0%였다. 학생 10명 중 8명이 학교 밖에서 추가 교육을 받고 있다.

2024년 국방 예산은 약 59조 원이었다. 민간이 자발적으로 쏟아붓는 사교육비 총액이 국방 예산의 절반에 달한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교육에 쓰는 돈(약 103조 원)의 약 30% 수준을 민간이 추가로 쓰고 있다.

사교육 수강 목적을 보면 학교 수업 보충(50.5%), 선행학습(23.1%), 진학 준비(14.4%)가 주를 이룬다. 세 가지 모두 학교 시스템의 논리 안에 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높은 성적을 위한 투자다. 학원은 학교 시스템의 보완재가 아니라 증폭기다. 그런데 그 증폭이 AI가 가장 잘하는 것 — 빠른 계산, 정확한 암기, 패턴 인식 — 과 겹친다면, 이 투자의 방향을 다시 물을 필요가 있다.

학교는 틀린 기관이 아니다.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수요에 맞게 설계됐고, 그 수요가 150년 동안 유지됐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지금 이 시스템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는 학교가 나빠졌기 때문이 아니다. 학교가 만들어내는 것과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준서 어머니가 자신의 경험에서 쌓아온 믿음을 아이에게 물려줄 때, 그 믿음이 형성된 시대가 지금과 같은지를 한 번은 물어봐야 한다.

29조 원의 사교육비, 학생 10명 중 8명의 학원 참여율. 이 숫자들은 준서 어머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부모가 그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선택이 시작된 전제 — 좋은 대학에 가면 안정적인 삶이 따라온다 — 를 마지막으로 점검한 게 언제인지, 한 번 떠올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전제가 바뀌면 선택도 바뀐다. 그 점검이 먼저다.

그 점검이 불편한 이유가 있다. 지금 아이에게 쏟고 있는 시간과 돈이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목동 학원가의 저녁 7시,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는 것으로는 그 방향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아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과, 그 열심이 10년 후에 유효한지는 다른 질문이다. 학교 시스템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이 설계된 세상과 지금의 세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것. 이 어긋남을 먼저 인식한 부모가 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어떤 질문인지가 이 책의 나머지를 결정한다.


[저작권 안내]
본 글의 저작권은 비욘드엑스에 있습니다. 사전 서면 동의 없이 본 글의 내용을 무단으로 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 및 방송하는 행위를 금합니다. 자료 문의: ceo@beyondx.ai

© 2026 BEYONDX. All rights reserved.
This is part of the STREAMLINE: Beyond Logistics Playbook by BEYONDX series.

공장형학교표준화된인력교육의지체사교육의역설Insight Stream

김철민

『네카쿠배경제학』의 저자이자, 유통 물류 지식 채널 비욘드엑스 대표입니다.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이 물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공급망의 진화 과정과 그 역할을 분석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서 국가 물류 혁신 정책 수립에 기여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