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밴은 1.5톤 독과점 택배차량을 대체할 수 있을까?
1.5톤 독과점 20년 만에 균열...퀵커머스 인프라가 부른 라스트마일 대전환
"다크 스토어가 퀵커머스의 '심장'이라면, 마이크로밴(Micro Van)은 그 심장에서 고객까지 이어지는 '혈관'이다. 한국 퀵커머스 시장이 5조원을 넘어서는 동안, 그 뒤편에서는 73억 달러(약 10조원) 규모의 글로벌 마이크로밴 시장이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
2024년 12월, 일본 야마토홀딩스는 의약품 라스트마일 물류를 위해 전기 밴 45대를 알프레사 그룹에 납품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25년 2월, 토요타와 스즈키, 다이하츠는 주행거리 200km의 배송 산업 전용 전기밴을 공동 발표했다. 같은 해 11월, 기아 PV5는 34년 역사상 한국 브랜드 최초로 '2026 세계 올해의 밴'에 선정됐으며, 심사위원단 26명은 만장일치로 이 결정을 내렸다.
겉보기엔 각기 다른 뉴스처럼 보이지만, 이 세 가지 사건은 하나의 큰 흐름으로 수렴한다. 퀵커머스와 이커머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도심 배송을 위한 전용 차량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달의민족은 서울·수도권에 70개 MFC를 운영하고, 쿠팡이츠는 전국 6,000개 편의점을 퀵커머스 거점으로 활용하며, 컬리는 2024년 6월 '컬리나우' 1시간 배송을 시작했다.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도심 골목길을 자유자재로 누비면서도,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전기 동력으로 달릴 수 있는 차량이다.
73억 달러 시장, 마이크로밴의 부상
글로벌 마이크로밴 시장은 2025년 55.5억 달러에서 2031년 73.2억 달러로 성장하며, 연평균 4.7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 동력은 명확하다.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좁은 도심 골목길을 달려야 하는 배송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이커머스 확산으로 인해 라스트마일 물류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밴은 대형 트럭이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좁은 도심 골목길에 최적화된 구조를 갖췄으면서도, 적재 공간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차지한다. 차체는 작지만 연비가 좋고, 전기차로 전환하기도 용이하다는 장점까지 더해지면서, 퀵커머스 업체들이 원하는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하는 셈이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엄격해지는 배출 기준과 안전 규제가 제조사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충돌 안전 구조 강화와 배기가스 필터 고도화 등으로 차량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차 시장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4년 미니차량 신규 등록은 전년 대비 10.7% 감소해 155만 7,868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규제 비용이 가격에 전가되면서 수요가 위축된 직접적인 결과다.
인도 시장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경상용차(LCV) 판매는 2024-2025 회계연도 58만 3,000대로 전년 59만 5,000대에서 줄어들었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신흥시장일수록 규제로 인한 가격 상승의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도표 1] 글로벌 마이크로밴 시장 전망
| 구분 | 2025년 | 2031년 | CAGR |
|---|---|---|---|
| 시장 규모 | 55.5억 달러 (약 7.7조원) | 73.2억 달러 (약 10.2조원) | 4.72% |
| 주요 성장 동인 | 도시화, 이커머스, 라스트마일 물류 | 전기차 전환, 녹색 물류 | - |
| 주요 제약 | 배출 규제 강화 → 가격 상승 | 가격 민감도 높은 개도국 | - |
출처: Research and Markets (2026)
기아 PV5가 주목 받는 이유
2025년, 기아는 한국 자동차 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PV5가 '2026 세계 올해의 밴(IVOTY)'에 선정된 것이다. 심사위원단은 "단순한 전기 밴이 아니라, 상용과 승객 수송, 레저의 경계를 무너뜨린 모듈형 모빌리티의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PV5는 기아가 처음으로 선보인 전용 PBV(Platform Beyond Vehicle)다. 차체 길이 4,695mm, 휠베이스 2,995mm로 중형 밴 크기지만, 실내 공간은 한 등급 위다. 플랫 플로어 설계 덕분이다. 배터리와 구동계를 바닥에 평평하게 배치해, 엔진룸과 센터터널을 없앴다. 덕분에 카고 모델은 최대 5,165L의 화물 공간을 확보했다. 성인 작업자가 허리를 굽히지 않고 상·하차 작업을 할 수 있는 높이다.
배터리는 두 가지다. 스탠다드 51.5kWh와 롱레인지 71.2kWh다. WLTC 기준으로 패신저 모델은 521km, 카고 모델은 379~528km를 달린다. 202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665kg 적재 상태로 693km를 주행해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웠다. 전기 경상용차 부문 세계 최장 거리다.
하지만 PV5의 진짜 혁신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FMS(Fleet Management System)가 탑재되어 있다. 차량 위치, 주행 이력, 배터리 잔량, 고장 코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운행 경로 최적화, 충전·정비 스케줄 사전 조정, 차량 가동률 분석으로 이어진다. 플릿 운영사 입장에서는 유지보수 비용과 운휴 시간을 줄이는 무기다.
OTA(무선 업데이트)와 디지털 키 2.0까지 결합하면, 차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업그레이드되는 자산으로 변한다. 심사위원단이 "차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허문 상용차"라고 평가한 이유다.
[도표 2] 기아 PV5 vs 글로벌 경쟁 모델
| 구분 | 기아 PV5 | 토요타·스즈키 전기밴 | BYD T4K |
|---|---|---|---|
| 주행거리 | 379~693km (WLTC) | 200km | 미공개 |
| 적재 공간 | 최대 5,165L | 미공개 | 적재 효율 최적화 |
| 핵심 기술 | FMS, OTA, 디지털키 2.0 | 배송 전용 설계 | 냉동·상온 겸용 |
| 생산 규모 | 연 15만대 (화성 공장) | 2025 출시 예정 | 중국 주력 |
| 수상 경력 | 2026 세계 올해의 밴 (IVOTY) | - | - |
출처: 각 사 공시자료 및 언론 보도 종합
1.5톤 트럭 독과점 시장, 변화의 조짐
한국 택배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차량 구조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현재 국내 택배 차량은 현대 포터와 기아 봉고가 사실상 전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2024년 두 모델의 합산 판매량은 16만 1,669대에 달한다. 연간 15만대 이상이 팔리는 1톤 트럭 시장은 현대·기아의 완벽한 독과점 체제 하에 있다.
문제는 이 독과점 구조가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 포터 초장축 모델이 1,030만원이었는데, 2024년 LPG 터보 모델은 2,039만원으로 20년간 약 80% 인상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는 50% 오르는 데 그쳤으니, 차량 가격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훌쩍 넘어선 셈이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가격 인상을 막을 방법이 없는 구조다. 중국산 BYD T4K 같은 전기 트럭이 도전장을 내밀긴 했지만, LFP 배터리에 대한 정부 보조금 삭감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포터·봉고를 위협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하지만 더 큰 변화는 수요 측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 택배 물동량은 2024년 59.5억개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15.48% 증가했고, 이는 2019년 27.8억개에서 5년 만에 2.1배로 늘어난 놀라운 수치다. 국민 1인당 연간 택배 이용 횟수는 100회를 넘어섰으며,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같은 중국 이커머스가 가세하면서 이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도표 3] 한국 택배 시장 구조
| 구분 | 수치 | 비고 |
|---|---|---|
| 2024년 택배 물동량 | 59.5억개 | 전년 대비 +15.48% |
| 1인당 연간 이용 | 100.4회 | 5년 전 대비 2배 |
| 1.5톤 트럭 판매 | 16만대/년 | 포터+봉고 독과점 |
| 일평균 주행거리 | 42km | 한국교통연구원 |
| 수도권 물동량 비중 | 70% 이상 | 전국 대비 |
출처: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한국통합물류협회, 상용차신문
물동량이 폭증하면서 배송 구조 자체도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형 물류센터에서 1.5톤 트럭이 직접 고객 문 앞까지 배송하는 단순한 구조였지만, 퀵커머스와 당일배송이 일상화되면서 간선 수송과 라스트마일 배송이 분리되는 추세다. 배민의 70개 MFC, 쿠팡의 6,000개 편의점은 모두 도심 안쪽 깊숙이 자리한 거점들이며, 여기서 고객까지는 불과 1~3km에 불과하다.
이렇게 짧은 거리를 위해 과연 1.5톤 트럭이 필요한가. 그것이 지금 우리가 답해야 할 핵심 질문이다.
퀵커머스, 마이크로밴 없이는 못 돈다(?)
배달의민족 B마트는 2024년 매출 7,568억원을 기록했다. 커머스 거래액은 1조원을 돌파했고, 처음으로 EBITDA 흑자를 달성했다. 서울과 수도권에 70개 MFC를 운영한다. 각 MFC에서 반경 1.5~3km 이내 고객에게 30분~1시간 배송을 제공한다.
쿠팡이츠는 다른 전략을 택했다. 자체 MFC를 짓는 대신, 전국 6,000개 편의점을 플랫폼에 연결했다. GS25, CU 같은 편의점을 퀵커머스 물류 거점으로 활용한다. CU의 배달 매출 신장률은 2023년 98.6%, 2024년 142.8%를 기록했다. 오프라인 편의점의 상권 반경은 100~200m지만, 퀵커머스에 입점하면 1km로 늘어난다. 같은 매장, 같은 재고로 10배 넓은 시장을 커버하는 셈이다.
컬리는 2024년 6월 '컬리나우'를 정식 런칭했다. 마포구 PP센터에서 1시간 내 배송한다. 강남 MFC 구축 계획은 임대료 문제로 불발됐지만, 샛별배송으로 축적한 물류 노하우를 1시간 배송에 적용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도심 배송 차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배민의 70개 MFC는 각각 배송 차량을 운영한다. 쿠팡이츠의 6,000개 편의점도 배송 수요가 늘면 차량 지원이 필요하다. 컬리 역시 마포 센터에서 강남·서초·송파까지 배송하려면 효율적인 차량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차량들이 도심 골목길을 달려야 한다는 점이다. 폭 2m 이하, 회전 반경 작고, 적재 효율 높고, 연비(또는 배터리 효율) 좋아야 한다. 바로 마이크로밴의 조건이다.
전기차 전환, 선택 아닌 필수
도심 배송은 환경 규제와 직결된다. 서울시는 2025년부터 녹색교통진흥지역에서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을 제한한다. 강남·종로·중구 등 주요 상권이 포함된다. 배민 MFC 상당수가 이 지역 안에 있다. 내연기관 차량으로는 배송이 불가능해진다.
전기차 전환은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위밋모빌리티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전기 마이크로밴은 경유 냉장 차량 대비 유류비가 1.5배 낮다. 연간 3만km를 달린다고 가정하면, 차량 1대당 연 200~300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 배민처럼 70개 거점을 운영하는 업체라면, 절감액은 수십억원 단위다.
배터리 주행거리도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다. PV5는 693km를 달렸다. 하루 평균 배송 거리가 100~150km인 도심 물류에서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충전 인프라도 빠르게 확충되고 있다. 환경부는 2030년까지 전국에 급속충전기 5만기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보조금도 무시할 수 없다. 전기 경상용차는 국고 보조금 최대 1,400만원, 지자체 보조금 추가로 받을 수 있다. PV5 WAV 모델의 경우, 서울시 기준 보조금 적용 시 5,300만원에서 4,268만원으로 가격이 떨어진다. 1,000만원 이상 할인되는 셈이다.
모듈화와 컨버전, 차량을 플랫폼으로
PV5의 또 다른 혁신은 '컨버전(Conversion)' 생태계다. 기아는 PV5를 단순히 완성차로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용도에 맞게 개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설계했다. 루프, 도어, 테일게이트 등 주요 차체 부품을 모듈화한 '플렉시블 바디 시스템'이 핵심이다.
이 시스템 덕분에 PV5는 다양한 형태로 변신한다. 패신저(5/6/7인승), 카고(화물), WAV(휠체어 탑승), 크루(화물·승객 겸용), 오픈베드(픽업트럭), 라이트 캠퍼(레저용), 프라임(프리미엄) 등이다. 기아는 '애드기어(AddGear)' 시스템도 도입했다. 운전석 왼쪽, 플로어 콘솔 상단 등 실내 곳곳에 모듈형 사양을 장착할 수 있다. 스마트폰 거치대, 카드 결제기 등을 필요에 맞춰 추가할 수 있다.
컨버전 업체와의 협업도 적극적이다. 기아는 'PBV 컨버전 포털'을 운영하며 차량 3D 데이터, 인증 자료 등을 제공한다. 'PBV 컨버전 센터'를 통해 고품질 컨버전 차량을 직접 개발·생산하고 보증한다. 브라운어빌리티(BraunAbility) 같은 글로벌 컨버전 파트너, 포티투닷·삼성전자 같은 소프트웨어 파트너와도 협업한다.
이런 접근은 마이크로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냉장 기능이 필요한 식품 배송, 의료 기기 운송, 장애인 이동 지원, 소상공인 창업용 푸드트럭까지 하나의 플랫폼으로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밋모빌리티는 '제2회 기아 PBV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상온/냉장 겸용 차량 아이디어로 우수상을 받았다. 냉장케이스를 선택적으로 탑재할 수 있고, 온도를 원격으로 관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PV5 플랫폼이라면 실현 가능하다.
글로벌 경쟁, 한국의 기회
토요타는 2025년, 스즈키·다이하츠와 공동 개발한 전기 상용밴을 출시한다. 주행거리 200km, 배송 전용이다. 중국 BYD는 1톤 전기트럭 T4K를 한국에 공급한다. GS글로벌이 냉동탑차와 내장탑차로 컨버전해 판매 중이다. 일본 야마토홀딩스는 2024년 12월 전기 밴 45대를 도입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모두 라스트마일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은 어떤 위치일까.
PV5가 '2026 세계 올해의 밴'을 받은 것은 상징적이다. 한국이 전기차 기술력, 배터리 기술, 소프트웨어 역량을 결합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화성 EVO Plant는 연간 15만대 생산 능력을 갖췄다. 국내 수요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규모다. 수출 전략이 필수다.
기아는 이미 유럽·일본·북미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유럽 가격은 패신저 38,290유로, 카고 39,160~39,690유로부터 시작한다. 일본은 2026년부터 소지츠를 통해 판매를 시작한다. WLTC 기준 패신저 521km, 카고 379~528km로 현지화했다. 캐나다 시장에도 우선 판매한다.
한국 퀵커머스 시장이 2025년 5조원을 넘어서는 동안, PV5는 글로벌 73억 달러 마이크로밴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잡을 수 있다. 배민의 70개 MFC, 쿠팡의 6,000개 편의점이 만든 수요를 발판 삼아, 세계 도시의 골목길을 달릴 준비가 되어 있다.
라스트마일의 미래, 다음은?
마이크로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다음 단계는 자율주행이다. 기아는 PV5를 기반으로 모셔널과 공동 개발한 로보택시 모델을 준비 중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결합되면, 무인 배송도 가능해진다. 심야 시간대 배송, 인건비 절감, 24시간 운영이 현실화된다.
배송 로봇과의 협업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로보티즈의 자율주행 로봇 '개미'로 고양·파주에서 실증 사업을 진행했다. 마이크로밴이 MFC에서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배송하고, 로봇이 각 세대 문 앞까지 배달하는 시나리오다. 완전 무인 라스트마일이다.
글로벌 자율 라스트마일 배송 시장은 2023년 9.6억 달러에서 2032년까지 연평균 22% 성장할 전망이다. AI, 로봇공학, 센서 기술, 연결성이 핵심 동력이다. 한국은 이 모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PV5 같은 차량 플랫폼, 배민·쿠팡 같은 물류 인프라, 로보티즈 같은 로봇 기술이 결합되면, 한국이 글로벌 라스트마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퀵커머스가 만든 다크 스토어는 도시의 새로운 물류 거점이 되었다. 그 거점에서 고객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1km를 달리는 마이크로밴은, 단순한 배송 수단이 아니다. 도시 물류의 미래이자, 73억 달러 시장의 주인공이다. 한국은 그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1.5톤 트럭을 대체할 수 있는가
이제 핵심 질문에 답해야 할 시점이다. 기아 PV5나 현대 ST1 같은 마이크로밴이, 한국 택배 시장을 20년 넘게 장악해온 1.5톤 트럭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명확히 하자면, 완전 대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역할 분담은 불가피하며, 이미 그 변화는 시작됐다.
적재 용량의 한계
수치로 보면 한계는 명확하다. PV5 카고 모델의 최대 적재량은 665kg이고, ST1 카고는 정확한 적재량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럽 LCV(Light Commercial Vehicle) 기준으로 설계돼 적재 공간이 약 4~5㎥ 수준으로 추정된다. 반면, 포터 1톤 트럭의 적재량은 1,000~1,100kg이며, 1.4톤 트럭은 1,400kg에 달한다. 부피로 따져도 1톤 트럭은 4~5㎥, 1.4톤은 6㎥로 마이크로밴보다 여유가 있다.
택배 기사가 하루 배송하는 물량은 평균 200~300개이며, 피크 시즌에는 400개를 넘기기도 한다. 박스 크기가 제각각이고 부피가 큰 생활용품도 섞여 있는 상황에서, 마이크로밴으로 이 물량을 모두 싣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루에 2~3번 MFC를 왕복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오히려 배송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가 ST1을 개발하며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택배 차량의 일일 평균 주행거리는 42km다. 다만 이 수치는 간선 수송(물류센터 ↔ 서브터미널)과 라스트마일(서브터미널 ↔ 고객)을 합친 평균이다. 실제로 간선 수송은 50~100km를 달리고, 라스트마일은 10~30km 정도다. 마이크로밴의 주행거리(PV5 379~693km, ST1 317km)는 라스트마일 배송에는 충분하고도 남지만, 간선 수송까지 겸하기엔 애매한 수준이다.
배송 구조의 재편
그렇다고 마이크로밴이 시장에서 밀려날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퀵커머스와 당일배송이 늘면서 배송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대형 물류센터 → 1.5톤 트럭 → 고객현재: 대형 물류센터 → 도심 MFC → 소형 차량 → 고객
배민의 70개 MFC, 쿠팡의 6,000개 편의점, 컬리의 PP센터는 모두 고객과 1~3km 거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여기서 고객까지의 구간에서는 굳이 1.5톤 트럭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마이크로밴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들이 많다.
첫째, 도심 주행 효율의 차이다. 좁은 골목길 진입성, 지하주차장 접근성, 불법 주정차 단속 회피 등 모든 면에서 작은 차량이 유리하다. ST1은 전고 2,230mm로 설계돼 높이 2.3m인 지하주차장도 무리 없이 진입할 수 있는데,[^15] 이는 최근 아파트 민원으로 "저상 택배차로 바꿔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강점이 된다. 반면 1.5톤 트럭은 전고가 높아 이런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둘째, 환경 규제 대응이다. 서울시는 2025년부터 녹색교통진흥지역에서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을 제한하고 있으며, 강남·종로·중구 등 주요 상권이 모두 포함된다. 내연기관 1.5톤 트럭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반면, 전기 마이크로밴은 유류비도 1.5배 저렴해 연 3만km 주행 시 차량당 200~300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
셋째, 인건비 절감이다. 1.5톤 트럭은 기본적으로 대량 적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사 1명이 하루 종일 300개 이상을 배송해야 손익분기점이 맞는다. 하지만 마이크로밴은 적재량이 작아도 운영 효율이 높다. MFC에서 반경 1km 이내만 커버하면 되기 때문에, 1명이 하루 100~150개만 배송해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시나리오: 역할 분담 구조
현실적으로 마이크로밴이 1.5톤 트럭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배송 거리와 물동량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간선 수송은 여전히 대형 트럭의 영역으로 남고, 도심 라스트마일은 마이크로밴이 새롭게 개척하며, 아파트 단지 내부 같은 초근거리는 배송 로봇이 담당하는 3단계 구조다.
[도표 4] 라스트마일 물류 역할 분담 시나리오
주: 배송 거리는 평균 기준이며, 물동량과 지역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이 구조에서 마이크로밴 시장은 얼마나 될까. 배민 70개 MFC, 쿠팡 6,000개 편의점, CU 1만개 점포가 모두 퀵커머스 거점으로 작동한다고 가정하자. 각 거점당 평균 2대씩만 배치해도 1만 3,000대다. 여기에 컬리, 쓱배송, 네이버 장보기 등을 합치면 2만대는 거뜬히 넘는다.
2024년 1.5톤 트럭 판매가 16만대였다. 마이크로밴이 그 중 10~15%를 가져간다면 1.6만~2.4만대다. 글로벌 시장까지 감안하면 기아 PV5 생산능력 15만대/년, 현대 ST1 생산 규모를 고려할 때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장이다.
현대·기아의 전략적 선택
흥미로운 점은 현대·기아가 1.5톤 트럭 독과점을 굳건히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마이크로밴 시장을 선제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포터와 봉고로 간선 수송 시장을 장악하고, ST1과 PV5로 도심 라스트마일까지 선점한다는 전략인데, 이는 배송 체인 전체를 수직 계열화하려는 야심찬 시도로 읽힌다.
ST1 개발 과정만 봐도 이 전략의 치밀함이 드러난다. 현대차는 CJ대한통운, 롯데, 한진택배, 이케아, 컬리 등 18개 물류·유통사와 협업하며 현장의 불편 사항을 직접 청취했고, 그 결과물로 스마트 드라이브 레디(자동 시동), 카고 후방 충돌 경고, 카고 도어 열림 주행 경고 같은 실용적인 기능들을 개발했다. 단순히 차량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물류 솔루션 자체를 제공하겠다는 접근이다.
기아 PV5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FMS(차량 관제 시스템), OTA 무선 업데이트, 모듈형 '애드기어'로 차량을 플랫폼화하면서, 냉장 기능이 필요하면 냉장 모듈을, 의료 기기 운송이 필요하면 의료 모듈을 장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열 가지 용도를 커버할 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차량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시도다.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현대·기아는 한국 라스트마일 시장 전체를 수직 계열화할 수 있다. 간선 수송 차량도 우리 것, 도심 배송 차량도 우리 것이 되는 셈이며, 중국 BYD나 일본 토요타가 끼어들 틈은 사실상 사라진다.
마이크로밴 시장, 한국이 선도할 수 있는 이유
글로벌 마이크로밴 시장 73억 달러(2031년)를 두고 경쟁이 치열하다. 일본 토요타·스즈키는 주행거리 200km의 배송 전용 전기밴을 2025년 공동 출시했고, 중국 BYD는 T4K로 한국 시장에 진출해 GS글로벌을 통해 냉동탑차와 내장탑차를 판매 중이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세 가지 핵심 강점이 있다.
첫째, 세계 어디에도 없는 퀵커머스 인프라의 밀도다. 배민 70개 MFC, 쿠팡 6,000개 편의점, CU 1만개 점포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밀집도를 자랑하며, 이 인프라가 곧 마이크로밴에 대한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수요를 만들어낸다. 수요가 있어야 생산도 늘어나고 규모의 경제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결정적인 경쟁 우위다.
둘째,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기술력이다. PV5가 665kg 적재 상태로 693km를 주행하며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웠다는 사실은, 한국의 배터리 기술(SK온,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과 완성차 역량(현대·기아)이 결합됐을 때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이 조합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며, 쉽게 따라잡히지 않을 것이다.
셋째, 가장 역동적인 시장에서 얻는 빠른 검증이다. 한국 택배 시장은 연 59.5억개, 1인당 100개를 주고받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이다. 여기서 검증된 차량과 시스템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밖에 없으며, PV5가 '2026 세계 올해의 밴'을 받은 것도 바로 한국 시장에서 단련됐기 때문이다.
라스트마일의 미래, 다음은?
마이크로밴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며, 그 너머에는 자율주행과 로봇 배송이라는 더 큰 혁신이 기다리고 있다. 기아는 PV5를 기반으로 모셔널과 공동 개발한 로보택시 모델을 준비 중이며, 자율주행 기술이 결합되면 심야 시간대 배송, 인건비 절감, 24시간 운영이 현실화된다.
배송 로봇과의 협업 시나리오도 주목할 만하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로보티즈의 자율주행 로봇 '개미'로 고양·파주에서 실증 사업을 진행했는데, 마이크로밴이 MFC에서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배송하고 로봇이 각 세대 문 앞까지 배달하는 완전 무인 라스트마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글로벌 자율 라스트마일 배송 시장은 2023년 9.6억 달러에서 2032년까지 연평균 22% 성장할 전망이며, AI, 로봇공학, 센서 기술, 연결성이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한국은 이 모든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으며, PV5 같은 차량 플랫폼, 배민·쿠팡 같은 물류 인프라, 로보티즈 같은 로봇 기술이 결합되면 한국이 글로벌 라스트마일 시장을 선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퀵커머스가 만든 다크 스토어는 도시의 새로운 물류 거점이 되었고, 그 거점에서 고객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1km를 달리는 차량은 더 이상 무겁고 큰 1.5톤 트럭이 아니다. 작고 효율적이며 전기로 달리는 마이크로밴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73억 달러 시장의 미래다. 한국은 지금 그 중심에 서 있다.
용어 설명
- 마이크로밴 (Microvan): 소형 상용 밴. 일반적으로 전장 4~5m, 적재 용량 0.5~2톤급으로, 도심 배송에 최적화된 차량. 대형 트럭 대비 연비 효율이 높고 좁은 골목길 진입이 가능하다.
- PBV (Platform Beyond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 특정 용도에 맞춰 차체와 기능을 모듈식으로 변경할 수 있는 차량 플랫폼. 기아 PV5가 대표적이다.
- MFC (Micro Fulfillment Center): 도심형 소형 물류센터. 퀵커머스 업체들이 고객과 가까운 도심에 설치해 신속한 배송을 지원한다. 다크 스토어의 자동화된 형태.
- FMS (Fleet Management System): 차량 관제·관리 시스템. 여러 대의 차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위치·배터리·주행 이력·고장 여부 등을 통합 관리한다.
- 컨버전 (Conversion): 차량 개조. 기본 차량(도너 모델)을 특정 용도에 맞게 변형하는 작업. 냉동탑차, 캠핑카, 휠체어 탑승 차량 등이 대표적이다.
- 1.5톤 트럭: 한국 택배 시장의 주력 차량. 최대 적재량 1,000~1,400kg, 적재 부피 4~6㎥. 현대 포터와 기아 봉고가 시장을 독과점하며, 연간 16만대 이상 판매된다.
- 간선 수송 (Trunk Transportation): 대형 물류센터와 지역 서브터미널 간 대량 화물 운송. 주로 50~100km 거리를 1.5~3.5톤 트럭으로 운행한다.
- 라스트마일 배송 (Last-Mile Delivery): 물류센터에서 최종 고객까지의 마지막 구간 배송. 통상 1~5km 거리로, 도심 배송 효율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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