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이 갈라진다①] 30년 공급망이 무너진다
관세 전쟁이 다시 그리는 글로벌 물류 지도
2025년,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이 13.5%를 기록했다. 194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같은 해 미국의 관세 수입은 2,870억 달러. 전년 대비 192% 증가했다(Tax Foundation, 2026.02). 관세가 무역의 언어가 된 시대, 그 충격은 숫자 너머에 있다.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출범 이후 30년간 글로벌 기업들이 구축한 공급망의 설계 철학은 하나였다. '효율성'.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에서 생산하고, 가장 빠르게 보낼 수 있는 경로로 운송한다. GATT 체제를 계승한 자유무역의 프레임 아래서, 기업들은 세계 각지에 생산 거점을 세웠고 공급망은 국경을 넘어 촘촘하게 연결됐다. 30년 동안 이 설계는 작동했다. 비용은 떨어졌고, 속도는 빨라졌으며, 선택지는 늘어났다.
그런데 지금, 그 설계의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은 더 이상 '최적화 모델'이 아니다. '정치적 모델'이 됐다.
관세 타임라인이 말하는 것
2025년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하며 전 세계 무역 상대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모든 수입품에 10% 기본관세. 중국에는 34%를 추가로 얹어 펜타닐 관세(20%)까지 합산하면 54%에 달했다. 보복이 이어졌다. 4월 8~9일, 미중 양국의 응수 끝에 대중국 관세는 125%까지 치솟았다. 한 달 뒤인 5월, 90일 유예 합의로 10%까지 내려갔고, 10월 시진핑-트럼프 회담 이후 이 유예는 2026년 11월까지 1년 연장됐다.
수치만 보면 정상화된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기존 301조 관세, 232조 철강·알루미늄 관세, 그리고 품목별 추가 관세가 중첩되면서 중국산 상당수 품목의 실효세율은 여전히 30%를 넘는다. STS 크레인과 중국산 해양화물장비에는 100% 관세가 부과됐다(USTR, 2025.10). 반도체와 로봇·산업기계에 대한 232조 조사도 2025년 9월에 개시됐다. 관세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구조화됐다.
이번에는 왜 다른가
트럼프 1기의 관세는 '협상용 지렛대'였다. 딜이 성사되면 내릴 수 있는 카드. 2기는 성격이 다르다. 네 가지 구조적 변화가 겹쳤기 때문이다.
첫째, 미중 전략 경쟁이 고착됐다. 더 이상 관여(engagement)와 견제(containment) 사이를 오가지 않는다. 경쟁은 체제 수준에서 장기전으로 들어갔다. 둘째, 기술 패권이 분리되고 있다.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 핵심 기술 영역에서 미중은 각자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셋째, 안보와 통상이 하나로 결합됐다. 관세가 무역 정책이 아니라 안보 정책의 수단이 됐다. IEEPA(국제비상경제권한법)를 관세 부과의 법적 근거로 쓴 것 자체가 상징적이다. 넷째, 이 방향은 선거 사이클과 무관하다. 바이든 정부의 CHIPS Act와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트럼프 정부가 관세로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구조다. 중국 견제는 초당적 합의다.
이것은 경기 순환이 아니다. 지정학적 구조 변화의 산물이다. 그리고 구조적 변화는 되돌리기 어렵다.
"공급망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경로가 바뀌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2026년 2월 발표한 분석이 핵심을 찌른다. 2025년 미중 관세 전쟁의 결과, 글로벌 무역 총량은 크게 줄지 않았다. 줄어든 것은 '경로'다.
중국의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20% 감소했다. 수입 금액 기준으로 4,387억 달러에서 2,663억 달러로 떨어졌다(미국 센서스국). 1,700억 달러 이상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베트남의 대미 무역적자는 1,234억 달러에서 1,457억 달러로 223억 달러 늘어났다. 20%의 관세가 부과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더 극적이다. 대미 무역적자가 737억 달러에서 1,118억 달러로 50% 이상 급증했다. 반도체 관세 면제 효과다. 태국(+23%), 필리핀(+38%)도 대미 무역이 늘었다.
물동량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빠져나간 물량이 동남아와 대만을 경유해 미국에 도착하고 있다. 다만 이 흐름의 성격을 구분해야 한다. 환적 중심의 경로 우회는 단기적이다. 관세율이 바뀌면 다시 원래 경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생산기지 자체가 이전되는 구조적 재편은 되돌리기 어렵다. 공장을 지으면 5년, 공급망 생태계가 형성되면 10년이 걸린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경로 재편의 무게가 다르다.
| 구분 | 대미 무역 변화 (2024→2025) | 관세율 (2025 기준) | 방향 |
|---|---|---|---|
| 중국 | -$1,724억 (-20%) | 실효 30~47.5% | 급감 |
| 베트남 | +$223억 (+18%) | 20% | 급증 |
| 대만 | +$381억 (+52%) | 반도체 면제·기타 15% | 급증 |
| 태국 | +23% (적자 기준) | 19% | 증가 |
| 필리핀 | +38% (적자 기준) | 19% | 증가 |
| 한국 | 감소 | 자동차 15%, 기타 10%+ | 감소 |
출처: PIIE(2026.02), 미국 센서스국, Al Jazeera(2026.01)
이 표가 보여주는 패턴은 명확하다. 관세가 무역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무역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물류의 관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통계 변동이 아니다. 창고 위치가 바뀌고, 항만 물동량이 재배분되며, 해운 노선이 재설계되고, 포워딩 네트워크가 재구성된다는 뜻이다.
세 가지 '쇼어링'과 블록화의 실체
공급망 재편의 방향을 읽으려면 세 가지 키워드를 짚어야 한다.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생산 기지를 본국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통해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을 추진하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촉발된 흐름이다. 그러나 리쇼어링의 실체는 선언만큼 극적이지 않다. 반도체(TSMC 애리조나), 배터리(LG·삼성 미국 공장) 등 전략 산업에서는 실질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소비재와 중간재 영역에서는 비용 구조의 벽이 여전하다.
니어쇼어링(Nearshoring). 멕시코가 대표적이다. 미국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전략이다.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체제에서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면 관세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다만 멕시코 역시 25%의 IEEPA 관세 대상이 됐다가 유예·협상을 반복하는 중이다. 안정적 대안이라기보다는 '덜 불안한 선택'에 가깝다.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정치·경제적으로 우호적인 국가끼리 공급망을 묶는 전략이다. 가장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다. 미국이 한국·일본·대만·인도 등 동북아 및 인도태평양 국가로 수입 경로를 전환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12월 '2026 물류시장 전망 세미나'에서 진단한 것도 이 지점이다. "기존 미·중 양국 집중 구조가 세계 각국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세 가지 쇼어링은 서로 다른 경로지만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효율성을 위해 설계됐던 공급망이, 안보를 위해 재설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무엇을 바꾸고 있나
거시적 지형 변화는 결국 기업의 의사결정 테이블에 도착한다. 지금 글로벌 제조·유통 기업의 CEO와 물류임원이 직면한 질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CAPEX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중국 단일 거점에 집중된 생산 투자를 베트남·인도·멕시코로 분산할 경우, 물류 인프라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 듀얼 소싱(dual sourcing)을 기본으로 가져갈 것인가. 동일 부품을 두 곳 이상에서 조달하면 단가는 올라가지만, 한쪽이 막혔을 때 생산이 멈추지 않는다. 지역별 재고 전략을 달리할 것인가. 관세 변동이 잦은 미국향 물량은 안전재고를 높이고, 안정적인 시장은 적시(JIT) 기조를 유지하는 식이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공급망을 3개 이상 지역으로 다변화한 기업의 리스크 대응 시간은 평균 40% 단축됐다. 『물류트렌드 2026』은 화주사들이 이미 계약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분석한다. 노선별 비상 플랜을 명문화하는 것이다. 운임이 50% 이상 급등하면 항공 전환을 보장받고, 항만 대기가 5일을 초과하면 대체 항만을 활용하며, 전쟁위험 수수료가 발생하면 물류사와 비용을 분담하는 조건을 계약서에 넣는다. 공급망 재설계는 전략 보고서가 아니라 계약서와 투자 집행서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한국 물류에 던지는 질문
숫자만 보면 한국은 수세다. PIIE의 분석에서 한국은 대미 무역 점유율이 '감소'한 그룹에 속한다. 캐나다, 중국, 멕시코와 같은 범주다. 그러나 이 숫자 뒤에 다른 흐름이 있다.
감소 속에서 전략적 중요도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후공정, 배터리 셀·모듈, 디스플레이 등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고부가 중간재를 공급한다. 미국이 프렌드쇼어링으로 동북아(한국·일본·대만)에 수입을 재배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동차 관세가 25%에서 15%로 소급 인하된 것(2025.12 발효)은 협상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한국산 중간재 없이는 미국 내 공급망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대한상의 세미나에서도 항공물류가 '맑음' 전망을 받은 것은 AI 서버·반도체·배터리·제약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고부가 화물 수요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전략적 위치가 자동으로 물류 경쟁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류트렌드 2026』이 지적하듯, 관세 규정은 협상 결과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지금은 무관세로 보낼 수 있는 상품이 내일부터 3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받을 수 있다." 원산지 증명, 부품 비율 추적, 관세 시나리오 대응이 물류 기업의 핵심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이성우 선임연구위원의 진단이 현실적이다. "미국은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small yard, high fence)' 전략을 추진해왔고, 이것이 디리스킹(De-risking)의 핵심이다. 공급망이 변화하면 항만·공항·철도·도로를 잇는 물류 네트워크가 함께 재편된다."
대한상의 세미나의 업종별 전망도 시사적이다. 항공물류는 AI 서버·반도체·배터리·제약 등 고부가 화물 수요 증가로 '맑음'. 해운은 공급과잉과 운임 하락으로 '흐림'. 육상·물류창고는 이커머스 성장에도 기사·인력 부족이 공급을 제약한다. 같은 공급망 재편이라도 업종에 따라 기회와 위기가 갈린다.
| 전략 | 핵심 | 대표 사례 | 한국 연관성 |
|---|---|---|---|
| 리쇼어링 | 본국 회귀 | TSMC 애리조나, 인텔 오하이오 | 삼성·SK·LG 미국 공장 |
| 니어쇼어링 | 인접국 이전 | 멕시코 제조업 확대 | 직접 해당 약함 |
| 프렌드쇼어링 | 우호국 블록화 | 미국→한·일·대만·인도 전환 | 핵심 수혜 가능 |
| 디리스킹 | 중국 의존도 축소 | 애플 인도·베트남 생산 확대 | 중간재 조달 구조 전환 필요 |
출처: 대한상의 2026 물류시장 전망 세미나(2025.12), 물류트렌드 2026
30년 공급망의 설계도가 찢어지고 있다
1995년 이후 글로벌 공급망을 지탱한 원칙—자유무역, 비용 최적화, 국경 없는 분업—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관세 수입이 2,870억 달러를 찍고, 실효관세율이 80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며, 중국 대미 수출이 1년 만에 1,700억 달러 이상 증발한 현실 앞에서 "일시적 충격"이라는 해석은 설득력을 잃는다.
물동량은 줄지 않았다. 경로가 바뀌었다. 그리고 경로가 바뀌면 물류 인프라의 가치도 바뀐다. 어떤 항만은 물동량이 넘치고, 어떤 항만은 비어간다. 어떤 창고는 수요가 폭증하고, 어떤 노선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공급망이 갈라지면, 물류도 갈라진다. 그런데 갈라진 공급망 위에서 바다는 연결될까, 더 막힐까. 선복은 사상 최대인데 운임은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졌다. 물동량은 유지되는데 운임이 무너진다는 것은, 공급보다 경로 재편이 더 빠르다는 뜻이다.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가 1,000명을 자르고, 2026년 실적 전망을 "15억 달러 적자에서 10억 달러 흑자 사이"로 내놓는다. 지도가 바뀌면 바닷길도 바뀐다. 다음 편에서 그 바다를 본다.
참고 자료
- Tax Foundation, "Trump Tariffs: The Economic Impact of the Trump Trade War" (2026.02.12)
- PIIE(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Trump's trade war wreaked little havoc on trade patterns last year" (2026.02)
- Congress.gov CRS, "Presidential 2025 Tariff Actions: Timeline and Status" (R48549)
- White House Fact Sheet, "Trump Strikes Deal on Economic and Trade Relations with China" (2025.11)
- Al Jazeera, "US trade with Southeast Asia and Taiwan surging despite Trump tariffs" (2026.01.21)
- China Briefing, "US-China Tariff Rates - What Are They Now?" (updated 2025.11)
- 물류트렌드 2026 (한국해양수산개발원·미래물류기술포럼 엮음, 비욘드엑스 발행) — '관세 전쟁과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리스크와 물류 대응전략' 장
- McKinsey, 공급망 다변화 효과 조사
연재순서
[공급망이 갈라진다①] 30년 공급망이 무너진다ㅣ관세 전쟁이 다시 그리는 글로벌 물류 지도
[공급망이 갈라진다②] 바다가 넘친다ㅣ해운 공급과잉과 생존의 방정식
[공급망이 갈라진다③] 한국의갈라진 공급망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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