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빗장이 풀린다 - 진짜 전쟁은 배송이 아니라 물류
규제 완화 이후, 물류 인프라 경쟁의 서막
규제의 빗장이 풀리면 소비자에게 보이는 것은 '대형마트에서도 새벽배송이 된다'는 한 줄이다. 그러나 그 한 줄 뒤에는 점포 기반 물류냐 센터 기반 물류냐라는 근본적인 모델 경쟁이, 콜드체인 인프라의 전국적 구축이라는 대규모 투자 과제가, 그리고 심야 노동 인력 확보라는 구조적 병목이 숨어 있다. 새벽배송 허용은 시작이다. 진짜 전쟁은 그 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물류의 싸움에서 벌어진다.
두 개의 모델: 점포 기반 vs 센터 기반
규제 완화 이후의 새벽배송 시장에는 구조적으로 다른 두 가지 물류 모델이 공존하게 된다.
쿠팡의 모델은 '대형 물류센터 중심의 수직통합'이다. 전국에 분포한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보관·분류·포장하고, 자체 배송 인력인 쿠팡맨이 라스트마일까지 직접 배달한다. 10년간 9조 원 이상을 투자해 구축한 이 시스템은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수록 강력해지는 구조다. 자동화 설비와 데이터 기반 수요 예측이 결합되어 있어, 주문량이 늘어날수록 단위당 비용이 낮아진다.
대형마트의 모델은 '분산형 점포 물류'다. 전국 1,855개 점포를 도심형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SSG닷컴이 이마트 100여 개 점포에 구축한 PP센터가 그 원형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가장 가까운 매장에서 상품을 집품·포장하여 배송한다. 대규모 물류센터를 추가로 짓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초기 투자 부담이 낮고, 지방 소도시까지 포괄하는 전국적 커버리지에서 우위를 가진다. 특히 쿠팡 물류센터가 부족한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이 모델이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두 모델의 장단점은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 비교 요소 | 센터 기반 (쿠팡) | 점포 기반 (대형마트) |
|---|---|---|
| 초기 투자 | 매우 높음 (9조 원+) | 상대적 저투자 |
| 자동화 수준 | 높음 (자동 분류·포장) | 낮음 (수작업 집품) |
| 커버리지 | 수도권·광역시 중심 | 전국 1,855개 점포 |
| 상품 다양성 | 수만 SKU | 매장 재고 한정 |
| 확장 속도 | 느림 (센터 건설 필요) | 빠름 (기존 점포 활용) |
| 수익성 전환점 | 고물량 시 유리 | 저물량에도 운영 가능 |
| 데이터 활용 | 통합 데이터 운영 | 매장-온라인 분리 과제 |
어느 모델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인지는 현재로서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두 모델의 공존이 소비자에게 선택지를 넓히는 동시에 물류 인프라 투자 경쟁을 촉발한다는 점이다.
콜드체인의 전국화: 보이지 않는 전선
새벽배송의 핵심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온도다. 신선식품, 냉동식품, 유제품 등 식품 유통의 대부분은 콜드체인(저온 유통망)을 필요로 한다. 컬리가 '자정 샛별배송'에서도 "모든 상품은 다음 날 아침까지 신선도가 유지되도록 냉장·냉동 포장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현재 콜드체인 인프라는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쿠팡의 로켓프레시, 컬리의 샛별배송, SSG닷컴의 새벽배송 모두 수도권 중심으로 운영된다. 대형마트가 전국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한다 하더라도, 각 점포에 새벽배송에 적합한 냉장·냉동 포장 설비와 온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 매장 후방 공간의 물리적 제약도 있다. 낮 시간에는 오프라인 고객을 위한 매장으로, 심야에는 온라인 주문 처리를 위한 물류 거점으로 이중 운영해야 하는 복잡성이 추가된다.
역설적으로, 이 과제가 비수도권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쿠팡 물류센터가 없는 지역에서 대형마트 점포가 새벽배송 거점 역할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새벽배송 권역 밖에 있던 소비자들이 처음으로 이 서비스를 경험하게 된다.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의무휴업일을 주말에서 주중으로 바꾼 대구시와 충북 청주시에서 마트 주변 상권의 주말 평균 매출이 3.1% 증가한 사례는, 규제 조정만으로도 지역 소비 패턴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길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심야 물류 인력: 풀리지 않는 병목
물류 인프라가 갖춰지더라도, 그것을 운영할 사람이 없으면 새벽배송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규제 완화 이후 가장 먼저 부딪힐 현실적 병목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의 과로 문제는 이미 사회적 의제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택배 노동자의 과로 문제를 지적한 바 있고, 민주노총 마트노조는 "심야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책 없이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것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용노동부가 쿠팡에 대해 근로감독관 32명을 투입한 합동 수사·감독에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대형마트가 새벽배송에 진입하면, 심야 시간대 집품·포장·배송 인력이 추가로 필요해진다. 1,855개 점포가 물류 거점으로 기능하려면 점포당 최소 수 명에서 십여 명의 심야 근무 인력이 확보되어야 한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도 "점포나 물류센터는 이미 있고, 인력 배치나 재고 확충 등을 하면 운영은 가능하다"면서도 "인력 채용을 점검해봐야 할 것"이라고 인정한다. 물류 분야의 구인난이 이미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심야 노동이라는 추가 조건까지 붙으면 인력 확보의 난이도는 한층 올라간다.
이 문제는 결국 자동화 투자로 연결된다. 쿠팡이 물류센터 자동 분류·포장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인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대형마트가 쿠팡과 경쟁하려면 단순히 규제를 풀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점포 기반 물류의 자동화와 효율화에 장기적인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3편에서 분석한 것처럼, 정책의 일관성이 담보되지 않는 환경에서 대형마트가 이 수준의 투자를 결행하기는 쉽지 않다.
데이터가 가를 승부
물류 인프라의 물리적 경쟁 너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결정적 경쟁 영역이 있다. 데이터다.
쿠팡은 2,280만 활성 고객의 구매 이력, 검색 패턴, 배송 선호도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를 배치한다. 어떤 동네에서 어떤 시간대에 어떤 상품이 팔리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이 역량이, 물류 효율의 핵심이다. 컬리 역시 프리미엄 식품 카테고리에서 축적한 구매 데이터와 네이버의 검색·결제 데이터가 결합되면서 예측력을 높여가고 있다.
대형마트는 수십 년간의 오프라인 판매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온라인 물류 최적화에 활용하는 데이터 인프라는 아직 이커머스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매장 POS 데이터와 온라인 주문 데이터의 통합, 지역별·시간대별 수요 예측 모델의 구축, 재고 자동 배분 알고리즘의 개발이 선행되어야 점포 기반 물류 모델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 부분이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경쟁력을 결정짓는 숨은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류가 결정하는 유통의 미래
4편에 걸쳐 분석한 이 시리즈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14년간의 규제는 유통 시장을 왜곡했고, 규제 완화는 그 왜곡을 바로잡는 출발점이지만, 진짜 승부는 물류에서 갈린다.
1편에서 확인한 것처럼 규제는 보호 대상인 전통시장도, 규제 대상인 대형마트도 살리지 못했다. 2편에서 보았듯 쿠팡의 독주에는 이미 균열이 생기고 있다. 3편에서 분석한 3자의 셈법은 같은 변화를 놓고도 전혀 다른 방정식이 작동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4편에서 다룬 것처럼, 규제가 풀린 뒤의 경쟁은 배송 시간이 아니라 물류 모델, 콜드체인, 인력, 데이터라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의 싸움이다.
대형마트의 전국 1,855개 점포가 도심형 물류 거점으로 전환될 때, 그것이 쿠팡이 10년간 9조 원을 쏟아부은 센터 기반 물류와 어떤 경쟁 구도를 만들어낼지는 아직 열린 질문이다. 컬리-네이버 동맹의 일 2회 배송 체계가 프리미엄 장보기 시장에서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을지도, CJ대한통운의 물류 플랫폼 전략이 다극 경쟁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지도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 소상공인의 반발과 상생 방안이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심야 노동 인력 문제가 어떻게 해소될지도 미지수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2026년 이후의 유통 경쟁은 '누가 더 빠르게 배달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효율적인 물류 인프라를 갖추느냐'로 판가름난다. 소비자에게 보이는 것은 앱 화면의 배송 시간이지만, 그 배송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의 물류다. 빗장이 풀린 뒤의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참고 자료
- 이데일리, 「전국 1800개 점포 새벽배송 물류허브로」 (2026.2.5)
- 천지일보, 「점포망 대 센터망, 유통 지형 재편」 (2026.2.8)
- 서울신문, 「컬리, 자정 샛별배송 론칭」 (2026.2.9)
- 산업연구원, 의무휴업일 조정 효과 분석 보고서
「새벽배송 빗장이 풀린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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