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빗장이 풀린다 - 14년 규제의 역설
전통시장도, 대형마트도 살리지 못한 법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됐을 때, 법의 전제는 단순했다. 대형마트의 문을 닫으면 소비자는 전통시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금지하고, 월 2회 의무휴업일을 부과하면 골목상권이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자본의 확장을 억제하면 소규모 유통의 생태계가 회복될 것이다. 그 전제 위에 14년간의 규제가 세워졌다.
14년이 지난 2026년, 그 전제가 맞았는지를 데이터에 물어볼 시점이다.
보호 대상의 역설: 전통시장은 살아났는가
규제의 1차 보호 대상이었던 전통시장의 14년을 먼저 보자.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에 따르면 전통시장 등록 개수는 규제 도입 직후인 2013년 1,502개에서 2023년 1,393개로 줄었다. 법이 지키려 했던 바로 그 시장이 109개나 사라진 셈이다. 규제의 보호막 아래서 되살아나기는커녕 오히려 쇠퇴의 곡선을 그렸다.
더 결정적인 수치가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실시한 인식조사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을 이용한다'고 답한 소비자는 11.5%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아도 전통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형마트가 쉬는 날, 소비자들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한국경제연구원이 연 130만 건의 소비자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가 이 질문에 답한다. 2015년 대비 2022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기준으로 전통시장 식료품 구매액은 1,370만 원에서 610만 원으로 55%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온라인몰 구매액은 평일 기준 350만 원에서 8,170만 원으로 20배 이상 폭증했다. 법이 만든 공백을 전통시장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채운 것이다. 대형마트의 셔터가 내려간 주말 아침, 소비자들은 전통시장 골목이 아니라 쿠팡 등 이커머스 앱을 열었다.
규제 대상의 역설: 무너진 대형마트
규제의 직접 대상이었던 대형마트의 14년은 더 참담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1월 발표한 '2025년 연간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전체 유통업 매출에서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15.1%에서 2025년 9.8%로 떨어졌다. 사상 최초로 10% 아래로 내려앉은 수치다. 불과 4년 만에 5%포인트 이상이 증발했고, 같은 기간 온라인 유통 비중은 52.1%에서 59%로 확대됐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격차는 이제 되돌리기 어려운 구조적 간극이 됐다.
최근 5년간 업태별 연평균 성장률을 놓고 보면 대형마트의 추락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 업태 | 연평균 성장률 (2021~2025) | 비고 |
|---|---|---|
| 온라인 | +10.1% | 18개월 연속 두 자릿수 성장 |
| 백화점 | +5.7% | 프리미엄 소비 수혜 |
| 편의점 | +5.6% | 근거리·소포장 수요 흡수 |
| SSM | +1.0% | 소폭 성장 |
| 대형마트 | -4.2% | 유일한 역성장 |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2025년 연간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오프라인 유통 5개 업태 가운데 역성장한 것은 대형마트뿐이다. 규제를 받지 않는 백화점과 편의점은 각각 5%대 성장을 이어갔고, 같은 규제를 받는 SSM조차 미약하나마 플러스를 유지했다. 대형마트만 혼자 가라앉았다. 2025년 12월 기준 점포당 매출은 41억 8천만 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7.1% 줄었다. 설과 추석이 포함된 달을 제외하면 연중 거의 모든 달에서 역성장이 반복됐다.
이 추세의 극단적 결말이 홈플러스다. 대형마트 업계 2위 사업자가 2025년 3월 기업회생을 신청했고, 1차 공개 입찰에 참여한 기업은 단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았다. 급여 분할 지급이 통보됐고, 매출은 전년 대비 20%가량 감소했다. 규제가 보호하려 했던 '균형'은 이미 무너졌고, 그 잔해 위에 대형마트 2위의 퇴장이라는 현실이 놓여 있다.
규제 밖의 역설: 쿠팡이 채운 진공
규제가 만든 진공을 가장 정확하게, 가장 빠르게 채운 것은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다.
대형마트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온라인 주문조차 받지 못하는 동안, 쿠팡은 365일 24시간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으로 신선식품 시장까지 장악해 갔다. 2024년 쿠팡의 연 매출은 41조 3천억 원.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대형마트 3사의 매출을 합쳐도 28조 원대에서 정체하고 있으니, 한 기업이 업계 전체를 넘어선 구도가 완성된 것이다. 와이즈앱 기준 쿠팡의 2024년 결제추정금액은 55조 원으로, 국내 온라인쇼핑 시장(242조 원)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활성 고객 2,280만 명, 와우 멤버십의 연간 수입만 1.4조 원을 넘는다.
이 성장의 이면에는 규제의 비대칭이 있다. 같은 소비자를 두고 경쟁하는데, 한쪽은 새벽에 배송할 수 있고 다른 한쪽은 새벽에 포장조차 할 수 없는 구조가 14년간 유지됐다. 대형마트 3사 합산 매출이 28조 원대에서 횡보하는 동안, 쿠팡은 2023년 31.8조 원에서 2024년 41.3조 원으로 1년 새 10조 원 가까이 뛰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한쪽에만 운동장이 있었던 셈이다.
| 구분 | 쿠팡 | 대형마트 3사 합계 |
|---|---|---|
| 2024년 매출 | 41.3조 원 | 28조 원대 (정체) |
| 2023→2024 성장률 | +29% | 횡보 |
| 새벽배송 가능 여부 | 365일 24시간 | 법적 불가 |
| 온라인 주문 시간 제한 | 없음 | 0시~10시 금지 |
출처: 쿠팡 2024년 4분기 실적, 산업통상자원부
14년의 데이터가 증명하는 것
규제 도입 전후의 유통 지형 변화를 하나의 표로 놓으면, 이 법이 14년간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 지표 | 규제 도입기 (2012~2013) | 현재 (2024~2025) | 변화 |
|---|---|---|---|
| 전통시장 수 | 1,502개 | 1,393개 | -109개 감소 |
| 의무휴업일 전통시장 이용률 | — | 11.5% | 사실상 무효 |
| 대형마트 매출 비중 | 약 20% | 9.8% | 반토막 |
| 온라인 유통 비중 | 약 20%대 | 59% | 3배 확대 |
| 쿠팡 연 매출 | 약 1조 원 (2014) | 41.3조 원 | 40배 성장 |
출처: 국가데이터처, 한국경제인협회, 산업통상자원부, 쿠팡 IR
어떤 지표를 들여다봐도 규제의 당초 목적과 현실 사이에는 거대한 괴리가 있다. 보호하려 했던 전통시장은 줄었고, 규제를 받은 대형마트는 무너졌고, 규제 밖에 있던 이커머스만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왜 실패했는가: 구조적 오류 3가지
첫째, 규제 대상의 비대칭이다.
유통법은 오프라인 매장 면적 3,000㎡ 이상을 기준으로 규제 대상을 정했다. 온라인은 처음부터 규제의 그물 밖에 있었다. 2012년에는 온라인 유통 비중이 20%대에 불과해 이 비대칭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온라인 비중이 59%에 도달한 2025년의 시점에서 보면 이것은 비대칭이 아니라 역차별이다. 동일한 소비자, 동일한 상품, 동일한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데 한쪽에만 족쇄를 채운 구조가 14년간 유지된 것이다.
둘째, 소비자 행동에 대한 오판이다.
이 법의 근본 전제는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소비자가 전통시장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소비자는 전통시장 대신 스마트폰을 열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온라인 소비 전환은 비가역적 구조가 됐고, 1인 가구 확대와 근거리 소비 패턴의 고착화가 이를 한층 가속했다. 소비자 행동은 법이 설계한 경로를 따르지 않았다.
셋째,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미대응이다.
14년간 유통산업발전법은 2013년 단 한 차례 개정에 그쳤다. 그 사이 쿠팡은 전국에 물류센터를 세웠고, 컬리는 새벽배송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발명했고, 네이버는 검색 플랫폼 위에 이커머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법은 2012년에 멈춰 있었고, 시장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법과 시장 사이의 시차가 14년간 누적된 결과가 지금의 유통 지형이다.
2026년 2월 8일, 14년 만의 전환점
당·정·청이 2026년 2월 8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합의했다. 대형마트의 0시~오전 10시 온라인 주문·배송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의 핵심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은 전자상거래를 위한 영업 행위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14년 만에 새벽배송의 빗장이 풀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의 서막이다. 의무휴업일 규제는 그대로 유지되기에 '반쪽짜리 완화'라는 지적이 나오고,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는 헌법소원까지 예고한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상생협력기금 출연 규모 확대와 같은 보완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규제 완화가 만들어낼 새로운 역학은 아직 불확실한 변수로 남아 있다.
14년의 규제가 남긴 교훈은 결국 하나다. 시장을 법으로 멈출 수는 없다. 법이 멈춰 있는 동안 시장은 이미 다른 곳으로 흘러갔고, 규제의 빈틈에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다. 보호하려 했던 곳은 쇠퇴했고, 억제하려 했던 곳은 무너졌고, 방치했던 곳만 거대해졌다. 유통산업발전법의 14년은, 그래서 역설이다.
참고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 「2025년 연간 및 12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2026.1)
- 국가데이터처, 전통시장 등록 현황 (2023)
- 한국경제인협회,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소비자 인식조사 (2025)
- 한국경제연구원, 소비자 구매 데이터 분석 (130만 건, 2015~2022)
- 쿠팡 Inc., 2024년 4분기 실적 발표 (2025.2)
- 와이즈앱, 2024년 이커머스 결제추정금액
다음 글 예고 — 2편: 쿠팡 독주 체제의 균열과 유통 지형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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