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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빗장이 풀린다 - 같은 규제 완화, 다른 계산법

김철민
김철민
- 10분 걸림

마트 vs 커머스 vs 재래시장: 3자의 셈법

2026년 2월 8일의 유통법 개정 합의는 하나의 사건이지만, 이해관계자마다 전혀 다른 방정식으로 읽힌다. 대형마트에게는 14년 만에 찾아온 반격의 기회이고, 이커머스에게는 독점이 깨지는 위협이자 새로운 경쟁의 시작이며, 소상공인에게는 또 한 번의 생존 위기이거나 혹은 재편의 기회다. 같은 규제 완화를 두고 3자의 셈법이 이토록 다르다는 것은, 이 변화가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유통 생태계 전체의 역학 재편임을 의미한다.

대형마트의 셈법: 전국 1,855개 점포라는 무기

대형마트 진영의 분위기는 '신중한 낙관'이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대형마트 3사(이마트 145개, 롯데마트 112개, 홈플러스 140개)와 SSM 4사(이마트에브리데이·롯데슈퍼·홈플러스 익스프레스·GS더프레쉬)의 전국 점포 수는 1,855개다. 쿠팡의 물류센터가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대비되는 전국적 커버리지다.

이 점포망은 그 자체로 '분산형 물류 거점'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SSG닷컴(이마트 계열)은 이미 전국 이마트 100여 개 점포 후방에 PP(피킹&패킹) 센터를 구축해 놓은 상태로, 일평균 처리 물량 13만 건 중 40%에 해당하는 5만 건 이상을 점포 기반으로 처리하고 있다. 매장과 온라인 재고를 실시간 연동하는 시스템도 갖추었다. 규제만 풀리면 별도의 대형 물류센터 없이도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새벽배송에 진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신선식품 영역에서 대형마트의 경쟁력은 상당하다. 수십 년간 축적된 직매입 소싱 역량, 산지 직거래 네트워크, 품질관리 노하우는 쿠팡 로켓프레시나 컬리가 단기간에 복제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쿠팡이 물류 자동화와 배송 속도로 시장을 장악했다면, 대형마트는 상품 품질과 가격 경쟁력으로 차별화할 여지가 있다. 트레이더스홀세일클럽의 초저가 대용량 상품군은 4인 가구와 자영업자 수요에 맞닿아 있어, 쿠팡과는 다른 고객층을 공략할 수 있다.

그러나 낙관만으로 채울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쿠팡이 10년간 9조 원 이상을 투자해 구축한 자체 배송 인력, 차량, 자동화 물류 시스템을 대형마트가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 의무휴업일 규제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월 2회, 소비자가 대형마트 온라인 주문을 할 수 없는 날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날짜에 구애받지 않는 이커머스로 소비 습관이 고착된 고객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정책의 일관성도 문제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여당은 새벽배송 근로시간을 제한하려는 법안을 검토했다가 이번에 방향을 180도 전환했다. 정책이 오가는 환경에서 대형마트가 수천억 원 규모의 과감한 투자를 결행하기는 쉽지 않다.

이커머스의 셈법: 방어와 확장 사이

쿠팡 입장에서 규제 완화는 독점적 지위가 약화되는 첫 번째 구조적 변수다. 지금까지 대형마트가 새벽에 배송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켓배송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 독점이 풀린다.

다만 쿠팡의 방어벽은 여전히 두껍다. 와우 멤버십이 만든 '쿠팡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소비 생태계는 단순히 새벽배송만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켓배송·로켓프레시·쿠팡이츠·쿠팡플레이를 아우르는 번들 전략, 그리고 전국 물류센터 네트워크의 규모와 자동화 수준은 대형마트가 즉시 모방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라는 신뢰 위기에도 불구하고, 소비 습관의 관성과 멤버십의 전환비용이 당장의 대규모 이탈을 막아주는 완충 장치가 되고 있다.

컬리-네이버 동맹은 쿠팡에게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이들은 쿠팡과 같은 '전 영역 장악' 전략이 아니라 프리미엄 신선식품과 일상 장보기에 집중하는 '정밀 타격' 전략을 택하고 있다. 컬리N마트의 재구매율 60%, 네이버플러스 멤버십과의 강력한 시너지는 이 전략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쿠팡이 규모와 속도의 게임을 지배한다면, 컬리-네이버는 큐레이션과 신뢰의 게임에서 차별화를 모색하는 구도다.

전략 요소쿠팡대형마트컬리-네이버
핵심 자산자체 물류망 + 멤버십 생태계전국 1,855개 점포망트래픽 + 신선물류
새벽배송 모델물류센터 → 직배송점포 → PP센터 → 배송물류센터 → 일 2회 배송
강점규모·속도·생태계전국 커버리지·신선소싱큐레이션·멤버십 시너지
약점신뢰 위기·정치적 리스크투자 격차·의무휴업일 잔존수도권 한정·수익성 미검증

소상공인의 셈법: 생존의 방정식

규제 완화 소식에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소상공인단체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정부와 국회는 대형마트 규제 완화 논의를 즉각 백지화하라"고 성명을 냈고,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는 헌법소원까지 예고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도 공동 반대 대열에 합류했다. "거대 플랫폼에 치이고 경기 침체에 우는 영세 자영업자들을 대기업의 무한 경쟁 틈바구니로 밀어 넣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노동계의 반발도 있다. 민주노총 마트노조는 "심야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책 없이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것은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게 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의 과로사 이슈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직후라는 맥락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소상공인 진영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전국 SSM 1,464개 점포 가운데 가맹점 비중은 49%에 달한다. 이 가맹점주들은 독립적 개인사업자이면서도 대기업 직영점과 동일한 규제를 받는다. 의무휴업일에 매장을 열 수 없다는 것은 이들에게도 매출 손실을 의미한다. '소상공인 보호'라는 규제의 명분이, 정작 소상공인의 일부를 역으로 규제하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 갈등을 '상생'이라는 프레임으로 봉합하려 한다. 대형마트의 상생협력기금 출연 규모를 확대하고, 전통시장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며, 소상공인 물류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14년간의 규제가 전통시장을 살리지 못했다는 데이터(1편 참조)는 이 접근의 한계를 이미 보여주고 있다. 규제와 보조금으로 시장의 구조적 전환을 막을 수 있다면, 전통시장은 이미 살아났어야 한다.

3자 경쟁의 본질: 누가 '고객의 냉장고'가 되는가

세 진영의 셈법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이들이 다투는 것은 하나다. 고객의 일상적 장보기 습관을 누가 선점하느냐, 즉 '누가 고객의 냉장고가 되느냐'는 싸움이다.

쿠팡은 이미 2,280만 명의 냉장고 앞에 서 있다. 대형마트는 전국 1,855개 매장에서 40년간 그 역할을 해왔다. 컬리-네이버는 프리미엄과 편의성을 무기로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어가고 있다.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은 '근거리 신선'이라는 본질적 강점을 보유하지만, 디지털화와 물류 역량의 격차가 그 강점을 발휘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규제 완화는 이 경쟁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지,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진입장벽이 내려간 뒤의 승부는 물류 인프라와 데이터 역량, 그리고 고객 경험의 질에 달려 있다. 그 구체적인 경쟁 지형이 4편의 주제다.


참고 자료

  • 한국체인스토어협회, 2025년 12월 기준 국내 점포 현황
  • 이데일리, 「전국 1800개 점포 새벽배송 물류허브로…유통 판 바뀐다」 (2026.2.5)
  • 머니투데이, 「쿠팡 따라잡는 이마트?…대형마트 새벽배송 군불」 (2026.2.5)
  • 뉴시스, 「대형마트 새벽배송 길 열리나…규제 풀어도 탈팡은 글쎄」 (2026.2.5)
  • 연합뉴스, 「영업시간 규제완화에 대형마트들 희망적…자영업자들은 반대」 (2026.2.5)

다음 글 예고 — 4편(최종): 규제 완화 이후, 물류 인프라 경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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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네카쿠배경제학』의 저자이자, 유통 물류 지식 채널 비욘드엑스 대표입니다.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이 물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공급망의 진화 과정과 그 역할을 분석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서 국가 물류 혁신 정책 수립에 기여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