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의 비극: 채용되지 않는 세대
2025년 초, 고용노동부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춘 청년들이 그냥 쉬는 상태에 빠지는 것은 괜찮은 일자리의 문이 좁아졌기 때문입니다."
장관의 발언이 흥미로운 것은 문제의 원인을 청년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라는 표현은 수사가 아니다. OECD가 2025년 교육지표에서 확인한 숫자가 있다. 한국 25~34세 청년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71%로 회원국 중 1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는 나라. 그런데 그 졸업생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같은 연령대 대졸자의 고용률은 80%로, OECD 평균(87%)을 밑돈다.
가장 많이 공부하는 나라인데, 그 공부가 취업으로 연결되는 비율은 평균 이하다.
숫자가 말하는 것
채용 공고를 보면 어긋남이 어디서 오는지 드러난다.
고용노동부가 2025년 분석한 상반기 채용공고 현황이 있다. 전체 채용공고 중 경력직 채용 비중은 82%였다. 신입 채용은 2.6%에 불과했다. 100개의 일자리 중 신입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3개가 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수치를 실감하기 위해 비교가 필요하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요 대기업들은 상반기와 하반기에 정기 공채를 진행했다. 수천 명을 한꺼번에 뽑는 구조였다. 신입 지원자들은 서류와 필기, 면접을 거쳐 경쟁했다. 이 경로가 있었기 때문에, 학점과 토익과 자격증을 쌓으면 그 경로로 진입할 수 있다는 공식이 작동했다.
그 경로가 사라지고 있다. 대기업들은 정기 공채를 수시 채용으로 바꾸거나 규모를 줄이고 있다. 수시 채용에서는 결원이 생겼을 때 경험 있는 사람을 바로 채운다. 신입을 뽑아 교육시키는 시간과 비용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2025년 12월 취업 플랫폼 캐치(CATCH)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43% 감소했다. IT·통신 분야는 67%나 줄었다. 대기업 개발자를 목표로 국비 학원을 다닌 비전공자들이 직격탄을 맞은 이유다.
신입 자리가 있더라도 경쟁은 가혹하다. SBS가 2025년 취재한 스타트업 신입 공채 경쟁률은 105대 1이었다. 100명이 지원해 99명이 떨어진다. 그 1명에게 기업이 요구하는 것도 달라졌다. 학점이나 어학 점수가 아니라, AI를 써서 실제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다.
기업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한 주요 IT 기업들은 2023년 이후 신입 공채 규모를 꾸준히 줄여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 직원이 AI를 써서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신입을 뽑아 교육시키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신입 채용 2.6%라는 숫자는(앞서 3장에서 확인한 수치다) 그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이런 현실 앞에서 한국경제인협회가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 2,938명을 조사했다. 4학년 재학생 또는 졸업자 10명 중 6명(60.5%)이 구직에 자신감을 잃은 '소극적 구직자'였다. 이 중 적극적으로 구직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서 더 준비하기 위해"(46.7%)였다.
이 응답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역량이 바뀐 것이다. 기업이 원하는 역량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것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도, 부모도, 사회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더 준비하겠다는 그들의 선택은 게으름의 반대다.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달리겠다는 결심이다.
"더 준비하기 위해" 물러서는 것이 반드시 나쁜 전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기다리는 것은 다르다. 많은 청년들이 학원을 더 다니거나, 자격증을 하나 더 따거나, 어학 점수를 올리는 방향으로 "준비"한다. 그런데 기업이 원하는 것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쉬었음이라는 새로운 이름
이 세대의 비극은 그들이 게으르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정반대다.
경향신문이 2025년 12월 취재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반 김모씨(26)는 당분간 취업 지원서를 내지 않기로 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기조차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가 택한 것은 일단 인턴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그는 "취뽀까지 1년 정도는 생각한다"고 했다. 이미 지원서를 수십 곳에 냈다. 통과된 곳은 없었다. 그래서 경력을 쌓으러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력을 쌓기 위해 또 인턴에 지원해야 한다. 인턴에 합격하려면 경력이 있어야 한다. 이 순환 안에 그가 있다.
김씨처럼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방향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일보가 2025년 취업 준비 청년 71명을 인터뷰했다. 이 중 44명(72.1%)은 대외활동을 했고, 28명(45.9%)은 취업 스터디를 했다. 어학연수와 취업 컨설팅도 열심히 받았다. 기자들은 이들을 취재하면서 "역사상 이렇게 열심히 산 청년들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은 수치심이 아니었다. 혼란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는데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일보 취재팀이 고용노동부 구인 공고 포털을 전수 분석한 결과도 이 혼란의 배경을 보여준다. 2년 사이 기업의 채용계획 인원이 37% 줄었다. 2023년 246만 명이던 것이 2025년에는 154만 명이 됐다. 일자리 총량 자체가 줄어드는 속도가 이렇게 빠르다면, 개인이 준비를 아무리 잘해도 자리가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런데 이 취재 과정에서 나온 말 하나가 더 있다. 면접에서 기업 담당자가 한 말이다. "젊고 경력도 있으면 좋겠어요." 신입을 뽑는 면접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신입이란 경력이 없는 사람을 뽑는 자리다. 그런데 경력을 요구한다. 방향이 틀렸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열심히 했다는 확신만 남은 것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채용 공고를 직접 보면 알 수 있다. 2020년 이전 주요 기업의 신입 채용 공고와 2025년의 신입 채용 공고를 비교하면 요구 사항이 달라졌다. 2020년 이전에는 학점, 어학 점수, 인턴 경험이 주된 기준이었다. 2025년 공고에는 "AI 활용 능력", "실전 프로젝트 경험", "ChatGPT나 생성형 AI를 업무에 적용해본 경험"이 포함되어 있다. 어떤 공고는 포트폴리오를 요구한다. 자신이 AI를 써서 실제로 무엇을 만들었는지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12년 동안, 대학에서 4년 동안, 이런 경험을 쌓을 기회가 있었는가. 거의 없었다. 학교의 시험은 AI를 쓰면 부정행위다. 과제는 AI를 쓰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취업 시장은 AI를 써본 경험을 요구한다. 교육의 금지와 사회의 요구가 정반대다.
일도 하지 않고 구직도 하지 않는 청년을 통계청은 "쉬었음"으로 분류한다. 2025년 2월, 이 쉬었음 청년의 수가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
이 숫자를 놓고 "요즘 청년들이 눈이 높다"는 시각이 있다. 이것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다. 중소기업이나 눈에 차지 않는 일자리에는 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시각에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 구조,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복지 격차는 OECD 국가 중에서도 크다.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비율은 10.9%에 불과하다.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ILO 고용정책국장 이상헌은 이것을 "제약된 합리성"이라고 표현했다. 첫걸음을 잘못 떼면 20~30년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섣불리 취업하지 않겠다는 선택이 개인으로서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를 단순히 "눈높이가 높다"고 치부하는 것은 구조적 현실을 개인의 태도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데이터는 다른 것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에서 쉬었음 청년의 85%는 삶에서 일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77.2%는 현재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쉬고 싶어서 쉬는 것이 아니다. 일하고 싶은데 일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쉬었음 청년 3,189명을 조사한 결과, 87.7%가 과거 근로소득 경험이 있었다. 첫 직장에서 실망한 뒤 노동시장을 떠난 것이다. 쉬었음 청년의 마지막 일자리는 제조업(14.0%)과 숙박·음식업(12.1%) 등 소기업에 집중되어 있었다. 첫 직장의 경험이 기대와 달랐고, 더 나은 곳으로 올라가는 경로가 막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멈춘 것이다. 그리고 쉬었음 청년 중 대졸자 비중은 2023년 43.0%에서 2024년 44.7%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가장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쉬는 집단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눈높이 문제"라면, 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이 눈높이가 더 높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이들이 취업 의지는 있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있다는 것이다. 77.2%가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단순히 눈높이를 낮추기 싫어서 쉬고 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개인의 실패인가, 시스템의 모순인가
"결국 실력 문제 아닌가"는 반론이 나온다. 진짜 뛰어난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뽑힌다. 취업이 안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상위 일부는 뽑힌다. AI 활용 능력과 실전 프로젝트 경험을 갖춘 사람은 채용 시장에서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이 놓치는 것이 있다. 지금 취업이 안 되는 청년들의 상당수는 준비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준비를 잘못된 방향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을 정한 것은 그들이 아니다. 학교가 그 방향을 정했다. 내신, 수능, 토익, 자격증. 부모가 그 방향을 지지했다. 학원이 그 방향으로 이끌었다. 사회 전체가 그 방향이 옳다고 말했다.
그 방향이 언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 없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그 방향은 상당 부분 유효했다. 그런데 ChatGPT가 출시된 2022년 11월을 기점으로, 기업이 원하는 것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학교도, 부모도, 당사자도 따라가지 못했다.
2019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면 지금 취업 시장에 나서는 나이다. 그 시절, AI가 취업 시장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예측한 진로 교사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것을 알고 AI 관련 경험을 쌓으라고 자녀를 이끈 부모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거의 없었다.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주장에는 암묵적인 가정도 있다. 개인이 올바른 방향을 알고 있었다면 그 방향으로 갔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AI 활용 능력이 취업에 중요하다는 것을 2019년에 알 수 있었던 고등학생이 얼마나 됐겠는가. 그것을 알아야 했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학교는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설계됐다. 그 시스템이 가장 잘 작동해서 만들어낸 졸업생이 지금 가장 좁아진 문 앞에 서 있다. 시스템의 모순이 사람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사회 전체의 비용이기도 하다. 개인이 아니라 구조가 잘못됐다면, 그 비용은 그 구조를 만든 사회가 지는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024년 이미숙 창원대 교수에게 의뢰한 연구 결과가 있다. 2019~2023년 5년간 쉬었음 청년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추산했더니 총 44조 4,991억 원이었다. 연평균 약 9조 원이다. 2025년 사교육비 총액 27.5조 원의 3분의 1을 넘는다. 학교 시스템에 투자한 비용이 제대로 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의 낭비가 이 정도 규모다.
한국은행이 2026년 1월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쉬었음 청년 중 비경제활동인구의 비중은 2019년 14.6%에서 2025년 22.3%로 확대됐다. 미취업 기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쉬었음 상태에 있을 가능성은 4%포인트씩 증가했다. 지금 쉬는 청년이 내년에도 쉬고, 내후년에도 쉴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다. 경험이 없는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그 경험 공백 자체가 채용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 구조적 함정이 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취업에 실패한 사람이 처음부터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와 재시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첫 번째 탈락이 "이번에는 준비가 부족했다"는 판단을 낳는다. 더 준비해서 다시 지원하기로 한다. 두 번째, 세 번째 탈락을 거치면서 지원 범위가 좁아진다. 눈높이를 낮추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잘 되지도 않는다. 이 사이클이 돌수록 이력서의 공백이 커지고, 공백이 커질수록 다음 지원이 더 어려워진다. 포기가 아니라 마모다.
처음에는 "조금 더 준비하고 지원하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 이력서에 그 공백이 생긴다. 면접에서 "그 기간에 뭐 했어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텼다는 말을 면접장에서 할 수 없다.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쉬면 쉴수록 돌아가기 어려워지는 구조적 함정이다. 이 함정을 만든 것은 개인이 아니다.
신입 채용 2.6%. 쉬었음 청년 50만 명 돌파. 이 숫자들은 5년 후, 10년 후의 예측이 아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10년 후다. AI는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10년 후의 노동 시장이 지금보다 더 우호적일 가능성은 낮다.
지금 초등학생 자녀에게 학원을 보내고, 내신을 챙기고, 스펙을 쌓아가는 것이 10년 후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이 챕터의 숫자들이 다시 읽힌다. 가장 열심히 공부했지만 일하지 못하는 청년들, 일하고 싶지만 일할 수 없는 청년들.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다. 시스템이 옳다고 말한 방향으로 달려온 사람들이다.
여기서 반론이 하나 나온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나. 학벌이 여전히 중요한 사회인데." 맞다. 한국에서 학벌은 여전히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첫 취업에서 유리하고, 일부 직종에서는 졸업장이 진입 조건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챕터가 보여준 것은 그 첫 취업의 문 자체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신입 채용 2.6% 시장에서 그 2.6%에 들지 못하면 출발점이 없다. 학벌이 가치를 발휘하려면 먼저 그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문의 너비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숫자들이 이렇게 쌓였을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질문이 있다. 지금 내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 그 문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문이 닫히고 나서 유용한 것인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모범생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출발점이다. 문을 통과한 뒤의 길과, 통과하기 위한 준비가 다르다는 것을 먼저 보는 것. 그것이 지금 부모에게 필요한 첫 번째 시선 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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